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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행복음

서시 — 소쩍새가 울다· · · 이 글을 완성하기 위해며칠 전부터내 마음 안에서소쩍새가 울고 있었다. 그 울음은글을 쓰라는 소리가 아니라,👉 따르라는 부름이었다. · · · 직행복음· · · 나는 오랫동안 신앙 안에 있었다.55년이라는 시간 동안말씀을 듣고, 배우고, 따르며 살아왔다. 그 시간은 헛되지 않았다.그러나 어느 순간부터이상한 간극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알고 있는 것과살아지는 것 사이의 간격. 나는 알고 있었지만,살고 있지는 않았다. · · · 그 간격은최근 몇 년 사이실수와 실패, 충돌로 드러났다. 이상하게도알고 있는 것으로는이 현실을 설명할 수 없었다. · · · 그때 한 말씀이 들어왔다. "너는 나를 따르라" 이 말씀은이해된 것이 아니라👉 사건으로 일어났다. · · · 그 순간부터..

기록 2026.03.26

요한에게 들은 이야기

요한에게 들은 이야기표지판 · 길 · 다리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이 생각은 어디서 온 걸까.그냥 흘려보내던 질문인데, 이 질문이 나를 붙잡았다. 들은 것과 아는 것나는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말씀도 들었고, 해석도 들었고, 체계도 들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 들은 것과 아는 것은 달랐다.머리에는 가득했지만 존재는 비어 있었다. 세상이 사람을 만드는 방법은 가랑비에 옷 젖듯 스며드는 것이다. 의도하지 않아도 생각 속으로 들어온다. 생물학적 유전이 아니라 사회학적 유전이다.전통은 시간이 권위가 된 것이고, 관습은 의식하지 못한 채 따르는 것이며, 문화는 밖에 나가야 보이는 공기 같은 것이다. 이것들은 몸에 배인다.그런데 들은 이야기는 다르다. 머리에 쌓인다. 그러나 생명이..

모임 2026.03.21

보이지 않는 것 II

보이지 않는 것 보이는 것이 있다면, 그것을 있게 한 무언가가 먼저 있었다는 뜻이다.그 무언가는 움직였다. 움직였다는 것은 살아있다는 것이다.살아 움직이는 것, 우리는 그것을 생명이라 부른다.그러므로 생명은 본래 보이지 않는다. 보이는 것은 생명이 남긴 흔적일 뿐이다. 생명에는 두 종류가 있다.스스로 존재하는 생명이 있고, 기대어 존재하는 생명이 있다.스스로 존재하는 생명은 자신의 형상과 모양을 따라, 전에 없던 생명을 만들어낸다.그 생명이 생각한다. 생각이 쌓이면 마음이 된다. 마음이 밖으로 나오면 말이 된다.말은 생명이 움직인 자국이다. 스스로 존재하시는 분의 말을 우리는 말씀이라 하고,그분의 마음을 성령이라 하고,그 생명 자체를 아버지라 부른다. 말씀이 성령으로 육신이 되셨다. 그분이 예수님이다. ..

모임 2026.03.21

아버지 품까지

아버지 품까지요한의 네 시퀀스 설명 서두살다 보면 사건이 온다. 크고 작은 사건들.기쁜 것도 있고, 고통스러운 것도 있다.이해되는 것도 있고, 도무지 알 수 없는 것도 있다. 그런데 돌아보면 보이는 것이 있다. 그 사건들이 우연이 아니었다.하나님이 알게 하시려고 일으키신 것들이었다.그리고 앞의 사건이 다음 사건을 준비하고 있었다. 시퀀스였다. 요한도 그랬다.에베소 20년이 요한복음을 준비했다.요한복음 10년이 서신서를 준비했다.서신서가 밧모섬을 견디게 했다.밧모섬이 계시록을 낳았다. 우연이 하나도 없었다.모든 사건이 하나를 향하고 있었다. 아버지 품까지. 이 글은 그 시퀀스를 따라간다.요한이 걸어간 길을 따라가다 보면우리 자신이 걸어온 길이 보인다. 그리고 지금 서 있는 이 자리가다음 사건을 준비하고 있..

모임 2026.03.17

뫼비우스의 띠

https://youtu.be/_6UMRXKB4ok뫼비우스의 띠보이는 현상 너머, 보이지 않는 생명을 발견하는 '영생의 기하학'1. 일반 띠: '나'와 '너'의 평면적 합의 (보이는 세계) 일반적인 종이띠를 같은 면끼리 붙인 것은, 인간의 상식과 눈에 보이는 관계를 상징합니다. 현상: 2등분하면 두 개의 독립된 고리로 완전히 분리됩니다. 본질: 서로의 생각이 맞을 때는 하나인 듯하나, 작은 이해관계의 충돌(가위질)에도 쉽게 남남이 되어버리는 *'생명이 결여된 평면적 관계'입니다. 2. 뫼비우스 띠: '나'를 뒤집어 '생명'으로 연결 (보이지 않는 세계) 띠의 한쪽을 뒤집어 연결하는 행위는 영적 전환의 시작입니다. 이는 곧 나의 입장을 내려놓고 하나님께 의뢰하며,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상대를 대하는 '사유의..

모임 2026.03.15

십자가에서 시작하는 이야기

십자가에서 시작하는 이야기모든 이야기의 시작은 십자가에서 해 보자.보이는 예수님.죽어가시는 예수님.절규하시는 예수님.하나님이라면서거기서 무엇을 하고 계시는가?대속이라고 한다.죄 때문이라고 한다.무슨 죄인가?쓸데없는 짓 아닌가?그게 왜 필요한가?믿음으로 보자.우리의 죄,내 죄가하나님의 아들이 죽어야 할 정도로그렇게 극악한 것인가?주님을 하나님으로 믿지 않는 죄가그렇게 어마어마한 것인가?그렇다면믿기만 하면 되는 것인가?믿으면하나님이 내 인생을 잘 돌봐 주셔서앞으로 아무 일도 없게 되는 것인가?그런데 왜나는 믿어도 안 되는가?영으로 보자.처절하다.저렇게 죽어가는예수님의 생명은지금 누가 사랑하고 있는 것인가?생명을 주신 아버지 하나님은어디 계신가?저 죽음을 보고 계신 것인가?참 모질다.모지시다.주님은 또 어떠한..

모임 2026.03.08

탕감

탕감 1. 마당시골 마을 끝자락, 황토 흙집 한 채가 있었다.벽은 갈라지고 지붕엔 이끼가 슬었다. 창문이라 부르기도 민망한 구멍 하나에 비닐을 붙여 바람을 막았다. 그 집에 부부와 열두 명의 아이들이 살았다. 맏이는 열다섯, 막내는 아직 젖을 뗀 지 얼마 안 됐다.끼니를 잇는 방법은 하나였다.언덕 위 기와집 마당을 밟는 것.아버지 철수는 매일 그 마당을 걸었다. 처음엔 고개를 들지 못했다. 발소리도 조심스러웠다. 마당 귀퉁이에 서서 기침 한 번으로 자신의 존재를 알렸다. 그러면 하인이 나와 보리쌀 한 되를 내밀었다. 철수는 그것을 두 손으로 받아 허리를 굽혔다.그렇게 몇 해가 흘렀다.어느 날부터 철수의 발걸음이 달라졌다. 마당을 제 땅인 양 성큼 들어섰다. 허리를 굽히는 각도도 줄었다. 기와집 주인 영감..

모임 2026.03.06

은혜 넘어에서

새벽 사유 — 은혜 너머에서새벽이다.은혜는 참 아름답다.사람을 붙잡는다.위로하고, 감싸고, 살게 한다.은혜 안에 있으면안전하다.따뜻하다.머물고 싶어진다.그래서 우리는은혜 곁에 집을 짓는다.축복,감사,말씀의 감동,사랑의 언어들…이 모든 것이나를 향해 말한다.“여기서 살아도 괜찮아.”은혜는매력적으로나를 붙잡는다.살라고.그러나새벽에 묻는다.여기가목적지인가.은혜는 길이다.표지판이다.생명으로 향하게 하는.십자가도머무는 곳이 아니라가리키는 곳이었다.아버지.생명을 주시는 분.지금도 살아 계셔일하고 계신 분.우리가 잠든 밤에도쉬지 않으시는 분.문득,나는 은혜를 사랑한 것이 아니라생명을 찾고 있었음을.주님은 여전히 말씀하신다.“너는 나를 따르라.”은혜가 나를 붙잡지만,생명은 나를 부른다.그래서이 새벽을 지나간다.은혜 안..

모임 2026.03.04

상호내주 · 요한 신학 · 그리고 새 예루살렘으로의 흐름

상호내주 · 요한 신학 · 그리고 새 예루살렘으로의 흐름1. 서론 — 대화의 중심 맥락이 대화 전체는 교리 정리가 아니라존재 경험의 해석에서 시작되었다.핵심 질문은 하나였다.복음은 무엇이 인간 안에서 실제로 일어나는가?논의의 중심에는 다음 세 축이 있었다.야다(Yada) — 하나님을 ‘아는’ 존재적 인식상호내주 — 하나님과 인간의 연합된 존재 방식새 예루살렘 — 그 연합이 완성된 거처 구조여기서 중요한 전환은 다음이다.복음은 집단의 승리가 아니라상호내주 안에 ‘남는 각 개인’의 이야기라는 인식이다.요한계시록의 “이기는 자”는 공동체가 아니라존재적으로 남는 개인이다.2. 구속사의 존재 흐름복음의 전개는 지리 이동이 아니라생명의 진행 단계로 이해된다.■ 나사렛 — 생명의 잉태보이지 않는 곳에서 생명이 시작된..

기록 2026.03.02

DOing에서 BEing로

intro:한 몸 안에서 살아가는 성도의 삶 .성경은 일곱 교회를 통해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전달합니다.다양성 속의 통일성: 일곱 교회는 서로 다른 상황(박해, 유혹, 나태함 등)에 처해 있지만, 모두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어야 하는 그리스도의 한 몸입니다. 어느 한 교회의 모습이 나의 모습일 수 있으며, 우리는 이 일곱 교회의 모든 교훈을 통합적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이기는 자의 삶: '귀 있는 자'는 단순히 소리를 듣는 자가 아니라, 말씀대로 살아내어 세상을 '이기는 자(단수,각 개인)'입니다. 각 교회에 주신 약속(생명나무, 만나, 흰 돌, 보좌 등)은 결국 하나님 나라의 충만한 복을 상징하며, 이는 한 몸 된 지체들이 함께 누릴 영광입니다.그리스도 중심의 삶: 각 교회마다..

모임 2026.0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