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사유 — 은혜 너머에서
새벽이다.
은혜는 참 아름답다.
사람을 붙잡는다.
위로하고, 감싸고, 살게 한다.
은혜 안에 있으면
안전하다.
따뜻하다.
머물고 싶어진다.
그래서 우리는
은혜 곁에 집을 짓는다.
축복,
감사,
말씀의 감동,
사랑의 언어들…
이 모든 것이
나를 향해 말한다.
“여기서 살아도 괜찮아.”
은혜는
매력적으로
나를 붙잡는다.
살라고.
그러나
새벽에 묻는다.
여기가
목적지인가.
은혜는 길이다.
표지판이다.
생명으로 향하게 하는.
십자가도
머무는 곳이 아니라
가리키는 곳이었다.
아버지.
생명을 주시는 분.
지금도 살아 계셔
일하고 계신 분.
우리가 잠든 밤에도
쉬지 않으시는 분.
문득,
나는 은혜를 사랑한 것이 아니라
생명을 찾고 있었음을.
주님은 여전히 말씀하신다.
“너는 나를 따르라.”
은혜가 나를 붙잡지만,
생명은 나를 부른다.
그래서
이 새벽을 지나간다.
은혜 안에서가 아니라,
생명 안으로.
심전에 계신
아버지를 향하여
...
πρός(pros):
face-to-face orient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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