탕감

1. 마당
시골 마을 끝자락, 황토 흙집 한 채가 있었다.
벽은 갈라지고 지붕엔 이끼가 슬었다. 창문이라 부르기도 민망한 구멍 하나에 비닐을 붙여 바람을 막았다. 그 집에 부부와 열두 명의 아이들이 살았다. 맏이는 열다섯, 막내는 아직 젖을 뗀 지 얼마 안 됐다.
끼니를 잇는 방법은 하나였다.
언덕 위 기와집 마당을 밟는 것.
아버지 철수는 매일 그 마당을 걸었다. 처음엔 고개를 들지 못했다. 발소리도 조심스러웠다. 마당 귀퉁이에 서서 기침 한 번으로 자신의 존재를 알렸다. 그러면 하인이 나와 보리쌀 한 되를 내밀었다. 철수는 그것을 두 손으로 받아 허리를 굽혔다.
그렇게 몇 해가 흘렀다.
어느 날부터 철수의 발걸음이 달라졌다. 마당을 제 땅인 양 성큼 들어섰다. 허리를 굽히는 각도도 줄었다. 기와집 주인 영감은 사랑채 창문 너머로 그것을 보면서도 아무 말 하지 않았다.
외상도 생겼다. 보리쌀 한 말, 두 말. 철수는 장부를 기억하지 않았다. 기와집은 기억했다.
2. 마님
어느 봄날 아침이었다.
철수가 여느 때처럼 마당에 들어서는데, 안채 문이 열리며 마님이 직접 나왔다. 철수는 걸음을 멈췄다. 마님이 직접 나온 것은 처음이었다.
마님의 얼굴은 온화했다. 무섭지 않았다.
“날씨가 풀렸네요.”
그 한마디가 철수의 목덜미를 붉게 물들였다. 마님은 아이 하나를 불러 보리쌀을 담게 했다. 평소의 서너 배였다.
“며칠 치 드려요.”
그리고 마님은 잠시 말을 멈췄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동안 가져가신 것… 다 잊기로 했어요.”
철수는 그 말의 무게를 곧바로 이해하지 못했다. 그저 허리를 굽히고, 또 굽혔다. 목이 메어 말이 나오지 않았다. 자루를 들고 돌아서며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기와집 둘째아들 준서는 사랑채 툇마루에서 그 장면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열두 살이었다.
3. 빈집
사흘이 지났다.
나흘이 지났다.
닷새째 되던 날, 기와집 아랫사람이 흙집 쪽을 지나다가 문이 열려 있는 것을 보았다. 안을 들여다보니 텅 비어 있었다. 솥단지도 없었다. 짚자리도 없었다. 열두 명의 아이들이 잠을 청하던 그 좁은 방이, 텅 빈 채로 봄볕을 받고 있었다.
아무 말도 없이 간 것이었다.
마당을 밟으러 오지 않았다. 인사도 없었다. 그냥, 사라졌다.
준서의 아버지는 그 소식을 듣고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저녁상을 물리고 나서야 한마디 했다.
“노잣돈이 된 거지, 뭐.”
준서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한 채 잠이 들었다.
4. 65년
세월이 흘렀다.
흙집 자리엔 지금 빌라 한 동이 들어서 있다. 기와집도 헐리고 없다. 언덕 위엔 교회당이 생겼다.
들리는 소문으로는, 철수의 아이들이 도시로 나가 저마다 뿌리를 내렸다고 한다. 맏이는 공장을 차렸고, 셋째는 약사가 됐고, 막내는 미국으로 건너갔다고도 한다. 확인할 방법은 없다.
그날의 흙집 부부는 이미 세상에 없을 것이다.
이제 일흔이 된 준서는 경비실 의자에 앉아 그날을 떠올린다. 마님이 손수 나와 보리쌀을 건네던 아침. 허리를 굽히고 또 굽히던 철수의 등. 그리고 닷새 후의 빈집.
준서는 오래 생각했다.
탕감해줬더니 사라졌다.
얼굴을 더 보고 싶어 한 일이, 오히려 가는 길을 열어준 것이 됐다.
5. 마당을 밟는다는 것
준서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탕감받은 뒤 마당을 더 밟고 있나, 아니면 그 집 식구들처럼 보리쌀을 챙겨 떠났나.
빚이 있을 때는 매일 갔다. 부담이 발걸음을 만들었다. 빚이 없어지자 발걸음도 없어졌다. 연결의 끈이 빚이었던 셈이다. 탕감은 자유였지만, 동시에 이별이었다.
준서는 자신의 신앙 안에서 그 역설을 오래 품어왔다.
대속은 모질다.
아들을 죽여서 빚을 없앤다는 것. 그 사랑의 방식은 따뜻하지 않다. 풀무불처럼 뜨겁고, 십자가처럼 처절하다. 모세는 광야에 버려졌고, 예레미야는 구덩이에 던져졌고, 바울은 매를 맞고 감옥에 갔다. 사랑받은 자들의 자리가 다 그랬다.
토사구팽 같았다.
그러나 준서는 안다.
잉태가 없으면 산고도 없다. 산고가 없으면 생명도 없다.
그 고통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6. 마당
오늘도 준서는 경비실 문을 연다.
아파트 입주민들이 들어오고 나간다. 준서는 고개를 끄덕이거나 가볍게 손을 든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그 자리를 지킨다.
밤이 깊어지면 홀로 앉아 글을 쓴다.
빚진 사람처럼 마당을 밟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그 마당이 사실은 은혜의 자리였다는 것을, 탕감받고도 그 마당을 계속 밟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준서는 아직도 그 답을 쓰는 중이다.
철수의 가족은 오래전에 사라졌지만, 그 빈집이 준서에게 물음을 남겼다.
그 물음은 65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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