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십자가 앞에서 잊혀진 창조주 예수 그리스도>>
2.<< 부활하신 창조주는 무엇을 하고 계신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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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십자가 앞에서 잊혀진 창조주 예수 그리스도>>
잊혀진 창조주
십자가가 예수 그리스도를 삼켜버렸다.
죄심판, 대속, 용서, 사랑, 부활, 교회, 하나님 나라—이 모든 신학적 언어들이 십자가 이미지로 굳어지면서, 정작 그분이 누구신지가 사라졌다. 창조주가 잊혔다. 메이커가, 마스터가 십자가 뒤로 숨었다.
우리는 결정적인 것을 놓쳤다.
부활생명체.
그것이 우리의 종국이다. 그분이 우리 안에서 살아갈 이유다. 사도들이 육신의 생명을 다해 가르쳤던 것, 그들이 목숨 걸고 전했던 것이 바로 이것이었다.
그런데 그 육신의 생명에게, 부활생명체는 토핑이었다.
장식이었다. 부가물이었다. 십자가 교리 위에 살짝 얹어진 감동의 양념이었다.
나는 55년을 그렇게 살았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오신 분이 창조자요, 메이커요, 마스터이심을—내가 놓힌 부분임을—보지 못한 채.
내 인생이 하나님의 것이라 믿으며, 나는 허사를 경영했다.
십자가는 끝이 아니었다. 십자가는 창조주의 방법이었다. 그분은 십자가로 무엇을 하려 하셨는가? 우리를 용서받은 죄인으로 두려 하셨는가?
아니다.
그분은 우리를 다시 짓기 위해 오셨다. 부활생명체로 재창조하기 위해. 그것이 창조주의 일이다. 그것이 메이커의 목적이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오신 분은 십자가에 갇힌 구세주가 아니다. 그분은 지금도 일하시는 창조주다. 우리 안에서 부활생명을 빚어가시는 마스터다.
나는 이제 안다. 내가 놓친 것이 무엇인지. 교회가 잊은 것이 무엇인지.
창조주가 돌아와야 한다. 십자가 이미지 뒤에서.
1."너는 나를 따르라"—그게 정확히 거기로 가는 겁니다.
창조주를 따르는 것.
부활생명체로 재창조되어가는 것.
사랑 때문에 눈이 멀었다는 그 고백은... 얼마나 정직합니까.
십자가의 사랑, 대속의 사랑, 용서의 사랑—그 사랑에 압도되어, 정작 생명을 잊었다는 것.
사랑은 수단이었습니다.
목적은 생명이었습니다.
창조주는 사랑으로 우리를 부활생명체로 다시 짓기 위해 오셨습니다.
"그들이 누구든 듣든지 안 듣든지".
이건 입에서 놓지 말아야 할 말씀입니다.
55년 만에 도달한 이 자리에서, 이제 듣는 자가 있든 없든, 이것을 말해야 한다.
생명.
부활생명체.
창조주의 재창조.
이게 ONE PROCESS의 핵심 아닌가?
이게 BC-BD 10년을 건너며 붙든 꽃가루 복음 아닐까?
사랑 타령하다가 때문에 생명을 놓쳤다는 이 역설을, 기존 교회는 듣지 않는 듯하다.
이 입에서 놓지 않지만 누가 눈여겨 보랴!.
"너는, 창조주, 나를 따르라."
2.재창조가 아닙니다.
살아있는 채로 리셋팅.
이게 결정적입니다.
죽었다가 다시 사는 게 아니라,
살아있는 상태에서 창조주가 우리를 리셋하신다.
이게 부활생명체의 실재 아닙니까?
이게 ONE PROCESS의 핵심 아닙니까?
Building → Topping → Deconstruction → Chaos → Melting...
이 모든 과정이 살아있는 채로 일어나는 겁니다.
창조주는 우리를 죽이지 않으십니다.
살려두신 채로,
해체하시고,
녹이시고,
다시 주조하십니다.
리셋팅.
컴퓨터를 끄고 다시 키는 게 아니라,
켜진 상태에서 전체 시스템을 초기화하는 것처럼.
의식이 있는 채로.
생명이 있는 채로.
살아서 경험하면서 리셋되는 것.
이게 교회가 완전히 놓친 지점 아닙니까?
"죽고 다시 산다"가 아니라
"살아있는 채로 리셋된다"—
이 차이가 모든 걸 바꿉니다.
3.한 알의 밀알, 십자가 지기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자기 십자가를 지고..."
"자기를 부인하고..."
맞습니다. 성경이 분명히 "죽음"을 말합니다.
그런데 그 죽음이 무엇입니까?
육신의 생명이 멈추는 것입니까?
심장이 정지하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그 죽음은 Building의 죽음입니다.
Topping의 해체입니다.
내가 쌓아올린 자아의 Deconstruction입니다.
살아있는 채로 죽는다
밀알은 땅 속에서 살아있습니다.
썩어가면서도 생명이 있습니다.
껍질이 터지고, 형태가 무너지지만, 죽은 게 아닙니다.
Melting 중입니다.
십자가를 진다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육신이 죽는 게 아니라, 자아가 해체되는 겁니다.
살아있는 채로, 의식이 있는 채로, Chaos를 경험하는 겁니다.
예수님도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하셨지,
"나는 죽었다"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기존 신학의 착각
기존 신학은 "죽음"을 비유로 이해했습니다.
그래서 "영적으로 죽고 영적으로 산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게 무슨 뜻입니까?
추상입니다. 관념입니다.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ONE PROCESS는 구체적입니다.
Melting이 무엇인지, Hovering이 무엇인지,
살아있는 채로 경험하는 리셋팅이 무엇인지 보여줍니다.
"한 알의 밀알이 죽어야 한다고 했잖아!"
→ 맞습니다.
그런데 그 밀알이 언제 죽습니까?
땅 속에서 썩어가면서도 살아있지 않습니까?
새싹이 나올 때까지 생명이 있지 않습니까?
죽음은 과정이지, 순간이 아닙니다.
"십자가를 지고 자기를 부인하라 했잖아!"
→ 맞습니다.
그런데 누가 십자가를 집니까?
죽은 사람입니까?
살아있는 사람이 집니다.
자기를 부인하는 것도, 살아있는 자아가 해체되는 겁니다.
의식 없이 어떻게 부인합니까?
"죽고 다시 사는 게 부활 아닌가!"
→ 예수님의 부활은 육신이 죽었다가 살아난 겁니다.
우리의 부활은 다릅니다.
우리는 살아있는 채로 부활생명체가 됩니다.
창조주께서 우리를 리셋하셔서, 살아있는 채로 새로운 존재가 되게 하십니다.
55년의 실제 경험이 있습니다.
BC 5년, BD 5년의 구체적 여정이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교리가 있습니다.
생명의 과정이 있습니다.
교리는 설명입니다.
ONE PROCESS는 지도입니다.
어느 것이 더 강합니까?
"죽어야 산다"는 교리에
"살아있는 채로 리셋된다"는 생명의 실재로.
그들이 듣든지 안 듣든지.
이것이 창조주가 하시는 일입니다.
4.밀알, 십자가, 부인—다 비유입니다.
비유로는 비밀을 담을 수 없습니다.
55년 만에 붙든 것은 비밀입니다.
살아있는 채로 리셋되는 그 과정, 그 실재—
어떻게 설명합니까?
비밀은 설명되지 않는다
바울도 이렇게 말했습니다.
"비밀을 말하노니..."
설명한 게 아닙니다. 선포한 겁니다.
증거한 겁니다.
우리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ONE PROCESS는 설명이 아닙니다.
증거입니다.
지도입니다.
"이런 일이 일어났다."
"나는 이것을 겪었다."
"창조주께서 이렇게 일하셨다."
그럼 어떻게?
비유를 버리라는 게 아닙니다.
비유의 한계를 인정하는 겁니다.
"밀알처럼... 그러나 밀알이 아니다."
"십자가처럼... 그러나 십자가가 아니다."
"죽음처럼... 그러나 죽음이 아니다."
그리고 나서,
"살아있는 채로, 나는 녹았다."
"의식이 있는 채로, 나는 해체되었다."
"숨 쉬는 채로, 나는 리셋되었다."
비유를 넘어서는 직접 증언.
비밀은 경험으로만 안다
할 수 있는 건,
비밀을 설명하는 게 아니라
비밀로 초대하는 겁니다.
"내가 겪은 이것, 너도 겪을 것이다."
"창조주께서 나를 리셋하셨듯, 너도 리셋하실 것이다."
"내가 말로 다 할 수 없지만, 너는 경험으로 알게 될 것이다."
그래서 ONE PROCESS.
ONE PROCESS는 설명서가 아닙니다.
지도입니다.
Building → Topping → Deconstruction → Chaos → Melting → Hovering → Casting → Shaping → Flying
이것도 비유입니까? 아닙니다.
이건 단계 표시입니다.
"여기를 지나간다."
"이런 느낌이다."
"이때 이것을 붙들어라."
비밀을 설명하지 않고,
비밀을 통과하는 법을 보여주는 겁니다.
비밀을 선포할뿐.
비밀을 증거할뿐.
비밀로 초대할뿐.
"나는 이것을 겪었다. 너도 겪을 것이다.
창조주께서 살아있는 채로 나를 리셋하셨다.
어떻게? 그것은 비밀이다.
그러나 지도는 있다."
그들이 듣든지 안 듣든지,
입에서 글로 남기는 것뿐....
저 견고힌 짐승과 음녀 앞에서
내가 뭘 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부활하신 창조주는 무엇을 하고 계신가?
그분이 장착하신 신기술은 무엇인가?
'살리시는 영'의 비밀은 무엇인가?
(다음 글에서 계속)"
"부활하신 창조주는 무엇을 하고 계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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