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십자가 앞에서 잊혀진 창조주 예수 그리스도>>
https://tableoflazarus.tistory.com/148
2.<< 부활하신 창조주는 무엇을 하고 계신가? >>
-목차-
I. 십자가의 진실 — 정말 죽으셨는가?
독자의 당연한 의심
성경이 증언하는 죽음
세 파트의 생명: 몸, 혼, 영
시공 없는 차원에서의 과정
II. 예수님과 우리 — 차이와 공통점
예수님의 경우: 몸 죽음 + 영혼 살아있음
우리의 경우: 살아있는 채로 리셋
신기술의 실제: 어떻게 느껴지는가?
누가 이것을 경험하는가?
III. 부활 후 — 재발견의 시간
부활생명의 첫 열매
디베랴 숯불 모임
"와, 보라!"에서 "너는 나를 따르라!"로
IV. 일타강사 시대 — 임마누엘
예수님의 지상 사역: 산상수훈, 오병이어
초대교회: 오순절 베드로의 설교
역사 속 일타강사들: 루터에서 빌리 그래함까지
왜 일타강사를 원하는가?
V. 개인교사 시대 — 인듀엘링
성령강림의 이상한 일: 15개국 언어
임마누엘에서 인듀엘링으로
개인교사의 특징
초대교회의 거룩한 충돌들
VI. 승천과 신기술 장착
아버지께로 가신 이유
살리시는 영이 되심
신기술의 내용: 살아있는 채로 리셋
VII. 새로운 발견 — 70년 후의 기록
요한복음 21장의 비밀
바울의 호버링: 새 생명, 옛 언어
우리가 발견해야 할 것
VIII. 생명이 먼저다
기능이 아니라 생명
창조주의 본업
환경을 조성하시는 분
I. 십자가의 진실 — 정말 죽으셨는가?
1. 독자의 당연한 의심
독자는 당연히 의심할 것이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경비병이 옆구리를 찔러 확인했다. 물과 피가 나왔다. 죽음은 확실했다. 그런데 당신은 '살아서 멜팅, 호버링'이라고 한다. 거짓말 아닌가? 독자를 현혹하는 것 아닌가?"
이 의심은 정당하다.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한다.
2. 성경이 증언하는 죽음
그런데 성경은 뭐라 하는가?
예수님께서 직접 말씀하셨다: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 (마 10:28)
몸과 영혼은 분리 가능하다.
몸이 죽어도 영혼은 살아있을 수 있다.
십자가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기도하셨다: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눅 23:46)
몸은 죽었다.
그러나 영혼은? 살아서 의식적으로 아버지께 나아갔다.
죽음이란 무엇인가?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같이" (약 2:26)
죽음은 영혼이 소멸되는 것이 아니라
영혼이 몸을 떠나는 것이다.
부자와 나사로 비유를 보라: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 그가 음부에서 고통중에 눈을 들어" (눅 16:22-23)
몸은 죽어 장사되었다.
그러나 영혼은? 의식이 있고, 고통을 느끼고, 말을 했다.
바울의 증언:
"몸에 있을 때에는 주와 따로 있는 줄을 아노니 이러므로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있는 그것이라" (고후 5:6, 8)
몸을 떠난다 = 몸의 죽음
주와 함께 있다 = 영혼은 살아서 주님과 함께
영혼의 생명은 몸의 생사와 무관하다.
그렇다면 십자가에서는?
예수님의 몸: 죽었다 (경비병 확인, 물과 피)
예수님의 영혼: 살아서 아버지께 나아갔다 (눅 23:46)
이것이 성경의 증언이다.
몸의 죽음 ≠ 영혼의 죽음
몸은 죽어도 영혼은 살아있다
3. 세 파트의 생명: 몸, 혼, 영
우리는 **세 파트(Threefold)**로 구성되어 있다.
몸(Body) — 물질적 생명
혼(Soul) — 마음, 생각 기능이 생명
영(Spirit) — 피조된 영, 하나님 아버지의 씨를 받는 밭이요 자궁
다 살아있어야 한다.
십자가에서:
몸: 죽었다 ✓
혼: 살아있었다 ✓
영: 살아있었다 ✓
4. 시공 없는 차원에서의 과정
십자가 이후, 무덤에서 부활까지—
이 과정은 시간과 공간이 없는 상태에서 이루어진다.
왜?
이것은 하나님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마 6:10)
이제 이 숨겨졌던 말씀이 드러난다.
하늘(시공 없는 차원)에서 먼저 이루어지고,
땅(시공의 차원)에서 나타난다.
십자가에서 부활까지:
몸: 죽었다 (시공의 차원)
영혼: 살아있다 (시공 없는 차원)
과정: 멜팅 → 호버링 → 캐스팅 (하나님 차원에서)
결과: 부활 (시공의 차원에 나타남)
II. 예수님과 우리 — 차이와 공통점
1. 예수님의 경우: 몸 죽음 + 영혼 살아있음
십자가 (금요일 오후 3시):
몸: 죽음 ✓
혼: 살아있음 ✓
영: 살아있음 ✓
무덤 (금요일 저녁 ~ 일요일 새벽):
시공의 차원: 몸은 무덤에 누움
시공 없는 차원: 멜팅, 호버링 진행
"사흘 밤낮을 땅 속에" (마 12:40) → 코쿤, 용광로
부활 (일요일 새벽):
시공 없는 차원에서 완성된 것이
시공의 차원에 나타남
부활생명체로 등장
2. 우리의 경우: 살아있는 채로 리셋
"우리도 마찬가지다"가 아니다.
모든 사람이 자동으로 이 과정을 겪는 게 아니다.
열망하는 주님의 형제들에게
창조주께서 '리셋 공정 ONE PROCESS'를 보여주신다.
신기술은 살아있는 몸에서 가능하다.
3. 신기술의 실제: 어떻게 느껴지는가?
이것은 이론이 아니다.
추상이 아니다.
경험상 지론이다.
몸이 감각된다.
심장은 불규칙하게 뛴다.
호흡은 거칠어진다.
창자는 환장한다.
머리는 맨땅을 박는 것 같다.
멘붕.
느낌이 그렇다.
이것이 증거다.
만약 죽었다면? →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다.
만약 의식이 없다면? → 알아차릴 수 없다.
그런데 느껴진다.
의식이 있는 채로 당한다.
살아있는 몸으로 겪는다.
이것이 바로 **"살아있는 채로 리셋"**의 실제다.
예수님의 경우:
몸이 죽은 상태에서 → 부활
우리의 경우:
몸이 살아있는 상태에서 → 리셋
이것이 신기술이다.
살리시는 영께서 장착하신 기술이다.
살아있는 채로:
몸: 살아있다 (심장 뛴다, 숨 쉰다)
혼: 살아있다 (의식 있다, 생각한다)
영: 살아있다 (하나님의 씨를 받는 자궁)
이 세 가지가 모두 살아있는 상태에서
시공 없는 하나님 차원에서
리셋 공정이 진행된다.
Building → Topping → Deconstruction → Chaos → Melting → Hovering → Casting → Shaping
이것이 가능한 이유:
첫 창조 때: 무생물(흙) → 생명
지금: 생물(살아있는 우리) → 새 생명
죽이고 다시 살리는 게 아니다.
살아있는 채로 리셋하시는 것.
이것이 살리시는 영의 신기술이다.
4. 누가 이것을 경험하는가?
자동이 아니다.
강제가 아니다.
열망하는 자.
주님의 형제 되기를 갈망하는 자.
부활생명체로 리셋되기를 원하는 자.
그들에게 창조주께서
ONE PROCESS를 보여주신다.
차이점 정리:
예수님의 경우:
몸 죽음 + 영혼 살아있음 = 부활생명체
우리의 경우:
몸 살아있음 + 혼 살아있음 + 영 살아있음 = 부활생명체
차이:
예수님: 몸이 죽었다가 부활
우리: 몸이 살아있는 채로 리셋
공통점:
둘 다 시공 없는 차원에서 과정 진행
둘 다 살리시는 영의 작업
둘 다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이 땅에서 나타남
그래서 답은: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몸이 죽으셨지만, 영혼은 살아계셨고, 시공 없는 하나님 차원에서 멜팅과 호버링이 진행되었다.
우리는 몸까지 살아있는 채로 같은 과정을 겪는다.
차이는 몸의 생사이고, 본질은 '살리시는 영'께서 시공 없는 차원에서 일하신다는 것이다.
III. 부활 후 — 재발견의 시간
1. 부활생명의 첫 열매
부활하신 예수님은 부활생명의 첫 열매(고전 15:20)로 나타나셨다. 이제 그분은 육신의 생명이 아니라 부활생명체였다.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게 아니다.
살아있는 상태에서 완전히 새로운 생명으로 리셋되신 것이다.
이것이 창조주의 신기술이다.
죽이고 다시 살리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채로 재창조하시는 것.
2. 디베랴 숯불 모임
부활 후, 제자들은 혼란스러웠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지만, 그분이 무엇을 하시려는지 몰랐다. 그래서 다시 어업으로 돌아갔다.
디베랴 바닷가, 숯불 앞.
베드로에게 예수님은 세 번 물으셨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그리고 마지막에 한 마디 남기셨다.
"너는 나를 따르라." (요 21:22)
3. "와, 보라!"에서 "너는 나를 따르라!"로
침례 후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 "와, 보라!" (요 1:39)
함께 가보자
내가 사는 곳을 보라
관찰하라
부활 후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 "너는 나를 따르라!" (요 21:22)
요한은 상관하지 마라
너는 네 길을 가라
나를 따르라
차이가 무엇인가?
**"와, 보라"**는 일타강사의 초대다.
**"너는 나를 따르라"**는 개인교사의 부름이다.
IV. 일타강사 시대 — 임마누엘(Immanuel)
1. 예수님의 지상 사역: 산상수훈, 오병이어
산상수훈 (마 5-7장)
산 위에 올라가신 예수님.
수많은 무리가 모였다.
한 곳에서, 한 목소리로, 같은 말씀을.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원수를 사랑하라..."
모두가 같은 것을 들었다.
한 강사, 한 메시지, 집단 감동.
이것이 일타강사다.
오병이어 (마 14:13-21)
오천 명이 모였다.
물고기 두 마리, 떡 다섯 개.
예수님이 축사하시고 떼어 주셨다.
모두가 배불렀다.
한 기적, 한 현장, 집단 체험.
사람들은 예수님을 왕으로 삼으려 했다.
왜? 일타강사의 능력이 눈에 보였기 때문이다.
칠천 명 (마 15:32-39)
또다시 사천 명이 모였다.
물고기 몇 마리, 떡 일곱 개.
다시 축사하시고, 다시 먹이셨다.
또 모두가 배불렀다.
패턴이 보이는가?
한 곳, 많은 사람, 같은 경험.
이것이 일타강사 현장이다.
임마누엘 시대의 특징:
임마누엘(Immanuel): 우리와 함께 계신 하나님
한 곳에 계심
많은 사람이 함께 들음
같은 말씀, 같은 기적
눈에 보이고, 계량화되고, 확장 가능
그러나 한계가 있었다.
예수님은 한 번에 한 곳에만 계실 수 있었다.
갈릴리에 계시면, 예루살렘에는 안 계셨다.
제자들과 함께 계시면, 다른 사람들은 기다려야 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하니라" (요 16:7)
2. 초대교회: 오순절 베드로의 설교
오순절 베드로의 설교 (행 2:14-41)
성령강림 후.
베드로가 일어나 설교했다.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셨으니..."
한 설교, 한 장소, 3000명 회심.
이것도 일타강사 현장이었다.
초대교회의 패턴:
솔로몬 행각에 모임 (행 5:12)
한 곳에서, 사도들의 가르침을 듣고
표적과 기사를 보고
많은 사람이 더해졌다.
여전히 일타강사 모델이었다.
3. 역사 속 일타강사들: 루터에서 빌리 그래함까지
루터 (1483-1546)
비텐베르크 대학, 95개조 반박문
한 사람, 한 메시지, 종교개혁
칼빈 (1509-1564)
제네바, 기독교 강요
체계적 신학, 장로교회 확립
쯔빙글리 (1484-1531)
취리히, 개혁 운동
설교를 통한 변화
존 웨슬리 (1703-1791)
야외 설교, 수만 명 집회
감리교 부흥 운동
조나단 에드워즈 (1703-1758)
"진노하신 하나님의 손안에 있는 죄인들"
대각성 운동
찰스 피니 (1792-1875)
부흥회, 회심 초청
현대 부흥회의 시조
무디 (1837-1899)
시카고, 대중 전도 집회
수십만 명에게 복음 전파
빌리 그래함 (1918-2018)
스타디움 전도 집회
TV 방송, 수억 명 도달
한국의 예:
여의도 순복음교회 (조용기 목사)
대형 집회, 순복음 운동
4. 왜 일타강사를 원하는가?
눈에 보인다
수백 명, 수천 명, 수만 명이 모인다.
계량화된다
몇 명이 회심했는지, 몇 명이 세례받았는지 셀 수 있다.
확장 가능하다
더 큰 건물, 더 많은 지교회, 더 넓은 방송.
성공처럼 보인다
하나님께서 축복하시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부활하신 창조주께서 원하시는 것은 일타강사가 아니었다.
<<일타강사 다시보기>>
Ⅰ. 성경 안의 ‘일타강사 구조’ (공적 전달의 현장)
1. 모세 — 최초의 메가 클래스
시내산 율법 수여
이스라엘 전체를 향한 단일 계시
한 산, 한 음성, 한 두려움
📖
“온 산에 연기가 자욱하니… 백성이 다 떨더라” (출 19:18)
👉 구조
하나님 → 한 사람 → 전체 백성
개인 내주 ❌ / 공적 계시 ⭕
2. 여호수아 — 결단 집회형 일타강사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온 회중을 향한 선택 촉구
📖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수 24:15)
👉 구조:
집단 결단
동일한 선택 요구
3. 엘리야 — 갈멜산 단회성 메가 이벤트
바알 선지자 450명 vs 엘리야 1명
불의 응답
군중의 동일 반응
📖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왕상 18:39)
👉 강력하지만 지속 불가
→ 바로 다음 장에서 엘리야는 낙심 (왕상 19장)
4. 예수님의 대중 설교들
산상수훈 (마 5–7)
감람산 강화 (마 24)
성전 가르침
📖
“무리가 그의 가르치심에 놀라니” (마 7:28)
👉 놀람은 있으나
👉 존재 변환은 아직 미완
5. 베드로 — 오순절 직후 메가 설교
3,000명 회심
동일한 회개의 반응
📖
“우리가 어찌할꼬?” (행 2:37)
👉 그러나 곧이어:
사도행전은 개인·가정·도시별 이야기로 분화됨
Ⅱ. 교회사 속 ‘일타강사 구조’ (현대판 포함)
1. 초대교회 교부들 — 정통 교리의 일타강사
어거스틴
아타나시우스
크리소스톰
📌 역할
이단 방어
교리 정립
공적 설교
👉 구조:
필요악이자 은혜
그러나 교부 = 성령으로 대체 불가
2. 중세 가톨릭 — 제도화된 집단 교습
미사
라틴어 예전
성직자 중심 구조
📖 대응 말씀
“너희가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마 15:9)
👉 예수님의 비판은 예배 자체가 아니라
👉 내면 비활성화 구조
3. 종교개혁자들 — 교리 각성의 슈퍼 강사
루터 — 이신칭의
칼빈 — 하나님의 주권
쯔빙글리 — 말씀 중심 예배
📌 성과
성경 회복
개인 신앙 각성
📌 한계
다시 교단화
다시 교리 중심화
👉 개혁자는 일타강사를 부수었지만,
또 다른 일타강사를 낳았다.
4. 대각성 운동 — 집회형 복음 전도
조나단 에드워즈
조지 휫필드
📌 특징
회개 설교
집단적 통곡
강한 정서 반응
📖
“진노하시는 하나님 손 안에 있는 죄인들”
👉 강력하지만
👉 세대가 바뀌면 다시 식음
5. 20세기 메가 전도자들
🔹 빌리 그래함
전 세계 crusade
여의도 1973
🔹 루이스 팔라우
도시 단위 복음 집회
👉 구조:
동일한 메시지
동일한 초청
동일한 결단 방식
6. 현대 메가처치 & 스타 목회자
미국:
릭 워렌
빌 하이벨스
조엘 오스틴
한국:
대형 부흥집회 강사들
교단별 유명 사경회 강사
📌 특징
메시지 브랜드화
설교 콘텐츠 소비화
회중의 수동화 위험
📖
“너희가 언제까지 어린아이로 남아 있겠느냐” (히 5:12)
7. 오순절·은사 집회형 일타강사
치유 집회
능력 전도
대형 성령 컨퍼런스
📖 대응
고린도 교회 (고전 12–14)
👉 은사는 참이지만
👉 은사 의존 구조는 미성숙을 낳음
V. 개인교사 시대 — 인듀엘링 (Indwelling)
1. 성령강림의 이상한 일: 15개국 언어
오순절의 이상한 일 (행 2:1-13)
성령강림.
120명이 성령 충만을 받았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각 사람이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행 2:4)
다른 언어들.
일타강사였다면?
→ 한 언어, 한 메시지, 한 목소리
그러나 실제로는?
→ 15개국 언어, 각자의 표현, 개별적 반응
왜?
성령께서 각 사람 안에 내주하셨기 때문이다.
2. 임마누엘 (Immanuel)에서 인듀엘링 (Indwelling) 으로
임마누엘 (Immanuel): 우리와 함께 계신 하나님
한 곳에 계심
많은 사람이 함께 경험
인듀엘링 (Indwelling): 우리 안에 거하시는 하나님
각 사람 안에 계심
각자의 언어로 말씀하심
전환이 일어난 것이다.
일타강사 → 개인교사
집단 경험 → 개별 경험
한 장소 → 각자의 삶
3. 개인교사의 특징
맞춤형이다
각 사람의 상황에 맞게
각 사람의 언어로
각 사람의 속도로
내밀하다
공개 강의가 아니라
일대일 교습
지속적이다
한 번의 집회가 아니라
매일, 매순간
보이지 않는다
계량화 불가능
통계 작성 불가
그래서 오해받는다.
"성령 받았는데 왜 각자 다른가?"
"왜 통일되지 않는가?"
"왜 혼란스러워 보이는가?"
4. 초대교회의 거룩한 충돌들
빌립보 교회 — 유오디아와 순두게의 충돌 (빌 4:2-3)
"내가 유오디아를 권하고 순두게를 권하노니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
성령 받은 두 여성 동역자가 충돌했다.
바울이 "같은 멍에를 멘 자"라고 인정하면서도 이견이 존재했다.
왜? 각자의 내주하신 성령이 보여주시는 방향이 달라 보였기 때문이다.
고린도 교회의 분열 (고전 1:10-13, 3:3-4)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바울파, 아볼로파, 게바파로 분열.
모두 성령 받았지만 각자 다르게 드러났다.
바울은 이를 "아직 육신에 속한" 것으로 진단하면서도, 동시에 각자의 성장 과정임을 인정했다.
데살로니가 교회 — 죽은 자들의 운명 (살전 4:13-18)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 못함을 우리가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미 죽은 성도들이 재림 때 어떻게 되는지 혼란.
같은 성령 받았어도 계시의 타이밍과 깊이가 달랐다.
바울과 바나바의 극적 충돌 (행 15:36-40)
"심히 다투어 서로 갈라서니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배를 타고 구브로로 가고 바울은 실라를 택한 후에..."
둘 다 성령 충만한 사도들.
둘 다 주님께 헌신된 종들.
하지만 마가 요한에 대한 관점이 완전히 달랐다.
바나바의 내주 성령: "회복과 재기회"를 보여주심
바울의 내주 성령: "사명의 신실함과 위험 회피"를 보여주심
결과?
하나의 선교팀이 둘이 됨.
결국 더 많은 지역에 복음이 전파됨.
후에 바울이 마가를 인정함 (딤후 4:11 "마가를 데리고 오라 그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
이것이 개인교사 시대다.
일타강사 시대에는:
같은 말씀 → 같은 반응 → 같은 결과
개인교사 시대에는:
각자의 언어 → 각자의 반응 → 다른 모습
혼란처럼 보이지만,
이것이 성령의 내주다.
하나님은 언제나
한 사람을 통해 말씀하셨다.
그러나 그 말씀은
결코 한 사람에게 머물게 하지 않으셨다.
일타강사는 시대를 여는 도구였지만,
성령은 시대를 사는 생명이다.
그래서 임마누엘은 감탄을 낳고,
내주하심은 각 사람을 걷게 만든다.
VI. 승천과 신기술 장착
1. 아버지께로 가신 이유
부활 후 예수님은 40일 동안 제자들과 함께 계셨다. 그리고 승천하셨다.
어디로?
아버지께로.
왜 아버지께로 가셔야 했는가?
부활생명체가 되셨지만, 아직 한 단계가 남았다.
"살리시는 영"(고전 15:45)이 되시는 과정.
창조주께서는 아버지께로 가셔서
신기술을 장착하셨다.
2. 살리시는 영이 되심
"마지막 아담은 살리시는 영이 되었나니" (고전 15:45)
예수님은 부활 후 살리시는 영이 되셨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첫 아담: 생령(living soul)을 받음
마지막 아담: 살리시는 영(life-giving spirit)이 되심
차이가 무엇인가?
생령: 생명을 받은 존재
살리시는 영: 생명을 주는 존재
첫 아담은 생명을 받았다.
마지막 아담은 생명을 준다.
3. 신기술의 내용: 살아있는 채로 리셋
이 신기술은 무엇인가?
살아있는 상태에서 생명을 리셋하시는 기술.
첫 창조 때:
무생물(흙) → 생명
아담(잠 재우고: 의식 없게) 생명 → 하와 생명 (생명의 분화)
지금 재창조:
생물(살아있는 우리) → 새 생명(부활 생명)
차이가 결정적이다.
첫 창조는 의식 없는 재료로 만드셨다.
지금은 의식 있는 상태에서, 살아있는 채로 리셋하신다.
VII. 새로운 발견 — 70년 후의 기록
1. 요한복음 21장의 비밀
요한의 제자들은 왜 70년이 지난 후에 디베랴 숯불 모임을 기록했는가? (공동체 추인)
그는 깨달았다.
**"너는 나를 따르라"**는 말씀이
부활생명이 사는 방식이라는 것을.
부활 전 제자들: "와, 보라!" → 일타강사를 따름
부활 후 제자들: "너는 나를 따르라!" → 개인교사를 따름
차이가 무엇인가?
일타강사 시대: 모두가 같은 것을 봄
개인교사 시대: 각자가 다른 것을 경험함
2. 바울의 호버링: 새 생명, 옛 언어
바울은 새 생명을 경험했다.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구약 언어로 설명했다.
가말리엘 문하생의 냄새가 났다.
지시하고, 명령하고, 정리했다.
왜?
아직 호버링 중이었기 때문이다.
새 생명은 받았지만,
새 언어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마 9:17)
새 생명에는 새 용어가 필요했다.
3. 우리가 발견해야 할 것
부활생명 예수께서 어디로 가셨는가?
아버지께로.
거기서 무엇을 하셨는가?
살리시는 영이 되셨다.
살리시는 영은 무엇을 하시는가?
환경을 조성하신다.
살아있는 채로 리셋하신다.
VIII. 생명이 먼저다
1. 기능이 아니라 생명
오해하지 말아야 한다.
성령은 Counselor, Helper, 인도자, 스승이 아니다.
그것들은 기능이다.
먼저 생명이 되어야 그 기능이 가능하다.
육의 생명(몸과 혼)에게 아무리 가르쳐봐야
그 가르침을 바벨탑을 빌딩하고 토핑하는 것으로 사용한다.
생명을 갈아엎어야 한다.
죽이고 다시 살리는 게 아니라,
살아있는 채로 생명을 리셋하는 것.
2. 창조주의 본업
첫 창조 시 너무 잘 만드셨다.
아버지는 농부다.
내재된 것이 드러나도록 환경을 조성하신다.
감춰진 것이 나타나고, 숨겨진 것이 드러난다.
우리는 '주님의 형제들'로 창조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씨가 잉태되어 부활생명체가 되는 것이다.
이는 예수님이 육신으로 창조되신 것이 아니라
성령으로 잉태되어 육신 되신 것이며,
십자가에서 한 알의 밀알이 떨어져 죽어 새 생명이 된 것과 같이
부활생명이 되신 것이다.
3. 환경을 조성하시는 분
이분이 영을 살리시는 영이시다.
환경을 조성하시는 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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