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벙찜밖에 할 수 없는 곳에서

콜미리형제 2026. 1. 2. 12:55


**벙찜밖에 할 수 없는 곳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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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무리 생각해봐도

아무리 생각해봐도 마음을 생명이라고 생각해 본 적 없었다.

몸에는 살아 움직이는 세포의 구성품, 미토콘드리아가 있다. 이것들이 모여 생각하는 기능을 유지하며 각자의 본능으로 드러낸다. 그게 마음이다.

마음의 콘트롤 타워가 있다. '센터'라는 용어보다 '타워'로 쓴 것은 스스로 존재하려는 존재의 모사품이 군림의 성격을 띠려 하기 때문이다. 의존적 존재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생존성이 발동한다. 아직 피조되었지만 창조주를 모르는 상태라 자기 보호, 안전을 경계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중심에 사는 생명체가 있다니 놀랄 일이다.

누가 이 생명체가 마음의 중심에 살 수 있다고 상상하겠나. 창조 때 참여한 것도 아닌데 어찌 알겠나. 최종 제품이 선행 제품을 알겠나. 더군다나 육안으로 보이지도 않는데... 말로 소통하는 것도 아니고 마음의 언어도 아니고 영의 언어로 소통하는데 알아먹겠나.

이해하기보다 '뭐 이런 게 있어?' 하고 더 이상히 여길 게 뻔하다. 그 마음의 콘트롤 타워 중심에 본인의 영이 사는지 누가 알겠나?

육체를 움직이게 하는 것은 분명히 마음이란 걸 알았다. 그것도 시행착오의 과정을 거쳐서 말이다. 그러다가 자신의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 본인의 몸의 부분도 있음을 알게 되었다. '내가 못하는 것이 있다니.' 결국 나는 스스로 존재하지 못하는 존재구나.

그러나 스스로 존재하려 한다.

이제부터 문제가 만들어지기 시작한다.

사는 방법을 누가 살짝 귀에 대고 속삭이면 듣지 않을 수 있나. 듣고 보니 기가 막히고 좋아 보이고 먹음직하고 지혜로울 만큼 탐스러운 말로 토핑하기에, 손 안 대고 코풀 수 있는데 누가 하지 않을 수 있나.

이상한 생명체가 영에 대고 말하는 것은 귀에 소근소근 속삭이는 것인데, 콘트롤 타워가 잡아챈 것이다. 이 시작된 공급 내용이 고급지다. 하 참...

그런데 창조주는 한발 늦으셨네. 왜? 이분은 거기에 살아야 하기에 신뢰를 쌓아 허락을 받아야, 노크하고 집에 들어가는 것처럼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일까?

그분은 귀에 대고 속삭이는 분이 아니라 앞에 서서 대면하며 사는 분이라는 것을 누가 알았겠나. 더구나 귀에 속삭이는 생명체는 그걸 아는지 창조주가 거기 못 들어가게 방해를 한다.

본의 아니게 이 틈바구니에 끼어 속절없이 당한 거다. 그냥 만들어진 것뿐인데 목적들이 있었다니. 다 이용하려는 거잖아? 자신들을 위해서? 너무하잖아. 만들어진 것뿐인데.

그 목적들을 알고나 보자 하고 관심을 가질 필요도 없었다. 필요성을 모르니까. 누가 알려고 하겠어. 마지막에 만들어졌는데.

너는 알았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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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우여곡절 끝에

우여곡절 끝에 창조주가 사람이 되어 십자가 메고 산 꼭대기에 꽂고, 그 십자가에 못 박혀 그 위에서 3+0으로 아래를 보고 계시며 게시하신다.

온통 피투성이 된 몸과 얼굴이 된 상태에서 오신다니?

신뢰 쌓기가 이렇게 힘들다니?

피 묻은 손으로 마음을 두드려 노크하시네.

이것을 누가 알랴!?

참 힘들게 사신다.

그럼 나도 힘들게 살아진다는 뜻이네.

그런데 이것이 안식이라 하신다.

기가 막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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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너는 나를 따르라

'너는 나를 따르라'라 하시며 어디로 가는 거냐? 승천? 그럼 어떠하라고요? 따랐더니 없으셔. 따라 죽어 가야 하는 거야?

'내가 가면 그가 온다.' '그가 오시면...' 소개를 남기셨네.

맨땅이다. 룰도 없다. 신호만 있다.

죄를 느낀다. 의를 인식하는 감이 있다. 세상은 이제 신경 꺼라. 이미 내가 존재하는 것 자체가 심판이다. 이제 너와 나다. 그다음이 보이겠지만 지금은 너만 나를 따라오면 돼.

그런데 너는 어딜 자꾸 기웃거리니? 네가 누굴 가르치려 드니? 너나 나 따라라!

신호를 어떻게 잡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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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나는 답답하다

나는 답답하다. 그런데 못 알아 못 먹는 걸 보시면 누가 답답한가?

차려놓은 밥상 앞에서 맹인처럼 더듬거리고 있으면 누가 환장하나? 배고파 미칠 것지. 지켜보는 이는 니 문제냐 내 문제냐?

그럼 차려놓은 의도는 뭔가? 차려놓지나 말지요. 냄새만 풍기면 미치라는 것 아닌가?

먹이는 기간이 필요하지. 젓가락질을 배워야 하겠지.

어떻게 알려 주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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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1mm

아! 1mm도 못 움직인 것인지, 안 움직인 것인지?

하나님 존전은 시간과 공간은 없다. 그냥 존재들만 하나님의 현현 앞에 얼굴로 대면하고 있다.

오호라!

서 있을 땅을 의식할 필요가 없다. 시간의 오고 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어제가 오늘이고 오늘이 내일이고 내일이 오늘인 것조차 느낌으로 오지 않는다.

시간과 공간을 경험한 자는 어리둥절하게 된다. 내가 아는 세계, 차원이 아니다. 나는 3으로 생각하는 구조에 익숙하다. 여기는 0이다. 제로베이스다. 영원이다.

내가 이것을 이해하려 하다니 말도 안 되는 짓을 일삼고 있었고, 있다. 답답해 미친다. 알고 싶은 욕망 타워가 여기서도 작동한다.

나는 하나님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내가 내 자신이 두려워진다. 럭비공같이 어디로 튈지 모르니까. 내가 이렇게 생겨먹었냐? 여길 어떻게 왔는지 신비롭다.

나는 아무래도 자격이 없다. 여기 있을수록 나는 자꾸 작아져만 간다. 원자나 분자가 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래야 맞다. 딱 내 위치가 거기다.

그것도 감사다.

나는 원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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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벙찜밖에

여보게 나는 너무 공상을 하며 벙쳐간다. 벙찜밖에 할 수 없는 곳에서의 일이 몸으로 전달되네. 이상한 일만 일어나네.

벙찌면 멈칫 상태여야 하는데, 시간과 공간도 없는데, 사건은 터지고 선명한데도 나는 거기서 볼 수밖에 없고 내 생명의 몸은 얼어버린 듯하다.

하다 보니 한 곳으로, 그 알 수 없는 곳으로.

생각의 현상은 보이는데 표현할 말이, 이해하지 못해 말을 잇지 못하는 나다.

이 내 자신도 이해 못 하겠다.

우리는 본다.

그러나 감당 못한다.

내가 할 것이 벙찜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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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맺음말

이 글은 설명이 아닙니다.
증언입니다.

3으로 생각하는 구조로 0을 이해하려는 몸부림입니다.
말로 할 수 없는 것을 말로 하려는 시도입니다.

벙찜밖에 할 수 없는 곳에서의 일을,
시간과 공간 있는 곳의 언어로 옮기려는 번역입니다.

완벽하지 않습니다.
이해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일어나고 있습니다.

보긴 봤습니다.
그러나 감당 못 합니다.

몸과 마음이 갈 곳을 찾지 못하는 벙찜,
현존 앞에서 어쩔 수 없는 벙찜을 기록합니다.

내가 할 것이 그것밖에 없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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