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눈을 뜨다
형제는 오늘도 눈을 뗐습니다.
"또 살아있네."
그는 이 말을 농담처럼 중얼거리지만, 사실 진심입니다.
그는 자신을 '몰살당한 루저'라고 부릅니다.
세상이 말하는 성공 같은 건 이루지 못했고, 교회에서도 별 볼 일 없는 사람이었으니까요.
창문으로 햇빛이 들어옵니다. 그는 침대 끝에 앉아 천천히 숨을 쉽니다.
"주님, 오늘도 제가 누굽니까?"
이 기도는 매일 반복됩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답을 기대하지 않는데도 뭔가 가슴속에서 움직입니다.
골목길을 걷다
형제는 청바지에 흰 티셔츠를 입고 나섭니다.
70대치고는 건강한 편이지만, 걸음은 빠르지 않습니다. 그냥 걷습니다.
손은 주머니에 넣고, 표정은 잔잔합니다.
누가 보면 그냥 산책하는 할아버지처럼 보이겠죠. 하지만 그는 압니다.
자기 발걸음이 자기 것이 아니라는 걸.
"생명이 한 걸음 앞서 걷는다."
멘토가 했던 말입니다.
처음엔 무슨 소린가 했는데, 이제는 압니다.
그는 노력해서 걷는 게 아니라, 그냥 반응하고 있다는 걸.
바람이 붑니다. 그는 걷습니다.
속에서 녹아내리는 것
형제의 가슴 안에는 용광로가 있습니다.
물론 실제로 있는 건 아니지만, 그렇게 느껴집니다. 뜨겁고, 녹아내리고, 형태가 사라지는 느낌.
"멜팅이라고 했지."
몇 년 전, 그가 가장 신뢰하던 교회 공동체에서 쫓겨났을 때, 그는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내가 뭘 잘못했지?" "왜 나한테 이러는 거지?" "하나님, 이게 뭡니까?"
분노, 좌절, 원망—모든 게 뒤섞였습니다. 그리고 그 감정들이 서서히 녹기 시작했습니다.
자아가 녹고, 명분이 녹고, "나는 괜찮은 사람이다"라는 확신이 녹았습니다.
반년 동안, 그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냥 침묵했습니다. 불편하게, 고통스럽게.
"이게 끝인가?"
그런데 이상하게도, 바닥에 닿았을 때 뭔가 바뀌었습니다.
성령이 감싸시다
형제는 그때를 이렇게 기억합니다.
"아무것도 안 되는 시기였어요. 근데 그게 끝이 아니었어요."
성령께서 그 위를 운행하셨습니다. 창세기 1장 2절처럼. 혼돈하고 공허한 그의 위를.
"호버링이라고 하더라고요. 감싸고, 붙잡아 두시는 거래요."
그는 그 시기에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할 수도 없었고, 하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있음' 속에서 뭔가 잉태되고 있었습니다. 그는 몰랐지만, 하나님은 그를 다시 만들고 계셨습니다.
새로 만들어지다
어느 날, 형제는 장을 보러 시장에 갔습니다.
한 할머니가 장바구니를 떨어뜨렸습니다. 사과와 배추가 바닥에 굴러다녔습니다.
예전 같으면 그냥 지나쳤을 겁니다. 바쁘다고, 귀찮다고.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습니다.
"제가 주워드릴게요."
그는 몸을 굽혀 하나하나 주워 담았습니다. 할머니는 고맙다며 연신 고개를 숙였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형제의 가슴속에서 뭔가 뜨거운 게 올라왔습니다. 기쁨? 평안? 뭐라 말하기 어려운 느낌.
"아, 이게 캐스팅이구나."
그는 깨달았습니다. 자기가 다시 시작하는 게 아니라, 다시 만들어지고 있다는 걸.
새 틀, 새 경로.
주님이 그를 새로 주조하고 계셨습니다.
그냥 반응하는 삶
그 후로, 형제의 삶은 달라졌습니다.
계획을 세우지 않았습니다. 결심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반응했습니다.
누가 도움을 청하면, 도왔습니다. 누가 이야기를 들어달라면, 들었습니다.
성경 구절이 떠오르면, 묵상했습니다.
"슈르드니스래요. 성령 반응력이래요."
형제는 이제 노력하지 않습니다. 그냥 따라갑니다.
생명이 한 걸음 앞서 걸으니까.
어느 날, 한 청년이 물었습니다.
"형제님, 어떻게 그렇게 평안하세요?"
형제는 웃었습니다.
"나도 몰라. 그냥... 생명이 앞서 가는 것 같아."
다시 깨지다
그렇다고 평탄한 건 아니었습니다.
어느 날, 형제는 교회 한 집사님에게 심하게 비난받았습니다.
"형제님은 도대체 뭐 하는 분이에요?
교회도 제대로 안 나오시고, 봉사도 안 하시고.
그러면서 신앙 있다고 할 수 있어요?"
그 말은 형제의 가슴에 금을 냈습니다.
"내가... 잘못하고 있나?"
형제는 벤치에 홀로 앉아 있었습니다.
작은 균열이 느껴졌습니다.
그의 머릿속에는 도자기 그릇이 천천히 금 가는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슬로우모션처럼.
뚝.
금.
"아, 또 깨졌구나."
형제는 한숨을 쉬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습니다.
"이건 실패가 아니라... 하중 테스트지."
새로 만들어진 그릇이 세상의 무게를 견딜 수 있는지 시험하는 단계.
그는 그렇게 받아들였습니다.
금으로 접합하시다
형제는 집에 돌아와 기도했습니다.
"주님, 제가 또 깨졌습니다. 약합니다. 여전히 루저입니다."
그런데 그때, 뭔가 따뜻한 게 그의 상처에 부어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골드 웰딩..."
일본의 긴츠기 기법처럼, 깨진 도자기를 금으로 접합하는 것.
주님은 그를 교체하지 않으셨습니다. 수리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냥 금으로 접합하셨습니다.
형제는 그제야 깨달았습니다.
"상처가 기능의 기초가 되는구나."
그의 약함은 약점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깨짐은 실패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존재의 증거였습니다.
"나는 루저다. 그리고 이게 내 승리다."
뿌드득, 목이 꺾이는 소리
형제는 가끔 이상한 소리를 듣습니다.
"뿌드득."
목이 꺾이는 소리.
누군가 자기를 오해할 때,
"왜 나한테?"라는 질문이 올라올 때,
주님께서 그의 목을 뿌드득 꺾으십니다.
"나의 명분"에서 "하나님의 경륜"으로.
"나의 의"에서 "주님의 뜻"으로.
그 소리를 들을 때마다 형제는 압니다.
"아, 또 꺾이는구나."
아프지만, 익숙합니다.
그리고 그 순간, 그는 다시 주님께 돌아갑니다.
저녁, 집으로 걷다
해가 집니다.
형제는 다시 골목길을 걷습니다.
손은 주머니에, 표정은 평화롭습니다.
그의 가슴이 은은하게 빛납니다. 황금빛으로.
물론 눈에 보이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그는 압니다.
"심전... 주님이 사시는 성전."
그의 '심장 박동과 폐 호흡' 속에 주님이 거하십니다.
살아있는 성전.
형제는 여전히 루저입니다.
세상이 보기엔 별 볼 일 없는 노인입니다.
하지만 그는 압니다.
해체하고,
녹이고,
감싸시고,
주조하시는 순환.
그게 멈추지 않는다는 걸.
그리고 그게 바로 생명이라는 걸.
에필로그: 루저의 고백
형제는 오늘도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는 루저입니다.
몰살당했습니다.
깨졌습니다.
여전히 약합니다.
그런데 이게 제 승리입니다.
왜냐하면 주님이 저를 버리지 않으시고 계속 만드시니까요.
금으로 접합하시니까요.
저는 산 제물입니다.
쓴맛입니다.
하지만 살아있는 생명입니다."
형제는 내일도 눈을 뜰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걸을 것입니다.
생명이 한 걸음 앞서 걷는 그 길을.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로마서 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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