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순애의 일상: 먹고, 먹이고, 먹히는 생명의 순환
프롤로그: 세 가지 먹임의 구조
강순애는 50대 중반의 평범한 집사였다. 그녀의 삶에는 세 가지 먹임의 구조가 작동하고 있었다.
1) 주님을 먹는다 (Eating the Lord) - 말씀과 성령으로 자신이 채워지는 구조
2) 주님으로 먹인다 (Feeding with the Lord) - 자신이 받은 생명으로 타인을 먹이는 구조
3) 주님께 먹힌다 (Being Eaten by the Lord) - 자신이 희생 제물로 소진되는 구조
이 세 구조는 분리되지 않고, 하나의 순환 회로로 작동했다. 그리고 그 회로는 언제나 고통과 함께 작동했다.
1. 바벨탑 해체: "내가 헌신하는 사람"이라는 탑
강순애는 20년간 교회 구역장으로 섬겨왔다. 새벽기도, 심방, 구제, 상담—그녀는 "헌신하는 집사"로 인정받았다. 그녀는 그 인정을 자기 정의의 꼭대기로 삼았다.
그런데 어느 날, 한 구역원이 그녀에게 말했다.
"집사님, 솔직히 집사님 말씀은 좀 부담스러워요. 항상 '해야 한다'는 느낌이 들어서요."
그 말은 강순애의 가슴에 박혔다.
"내가... 부담스러웠다고?"
그날 밤, 그녀는 기도하며 깨달았다.
"나는 주님을 먹이고 있었던 게 아니라, 나의 헌신을 먹이고 있었구나."
그녀가 쌓아온 명분탑이 뿌드득 소리를 내며 부러지는 것을 느꼈다.
2. 멜팅: 녹아내리는 "나의 의"
강순애는 구역장 사임서를 제출했다. 목사님은 말렸지만, 그녀는 물러났다.
몇 주 동안, 그녀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새벽기도도, 심방도, 봉사도 멈췄다.
"주님, 저는 지금까지 뭘 한 겁니까?"
그녀의 종교적 습관, 헌신의 기록, "나는 쓸모 있는 사람"이라는 확신—모든 것이 용융(Melting) 되었다.
그녀는 무기력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처음으로 자유로웠다.
"아, 나는... 아무것도 아니어도 되는구나."
3. 호버링: 주님을 먹기 시작하다
어느 날 새벽, 강순애는 성경을 펼쳤다. 의무가 아니었다. 그냥 배고팠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요한복음 4:34)
"양식... 먹는다는 거네."
그녀는 처음으로 말씀을 먹는다는 감각을 느꼈다. 지식이 아니라, 영양분으로.
몇 주 동안, 그녀는 아무 활동도 하지 않고 말씀만 먹었다. 요한복음, 로마서, 시편—그녀는 천천히 씹었다.
성령이 그녀 위에 호버링(Hovering) 하고 있었다. 아무것도 안 되는 시기였지만, 창조가 잉태되고 있었다.
4. 캐스팅: 새로운 틀 - "먹임의 통로"
어느 날, 강순애는 시장에서 한 노숙자를 만났다.
남자는 쓰레기통을 뒤지고 있었다. 강순애는 지나치려 했다. 그런데 가슴속에서 뭔가 움직였다.
"저 사람에게 밥을 사줘야 할 것 같아."
그녀는 남자를 식당으로 데려가 밥을 사주었다. 남자는 말없이 먹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강순애 자신도 배가 불렀다.
"주님... 제가 먹인 게 아니라, 주님이 저를 통해 먹이신 거네요?"
그녀는 깨달았다.
"나는 먹임의 통로로 다시 만들어지고 있다."
5. 슈르드니스: 먹고, 먹이고, 먹히는 자발적 순환
그 후, 강순애는 매주 시장에 나갔다. 계획이 아니었다. 그냥 그렇게 하고 싶었다.
그녀는 노숙자들에게 밥을 사주고, 커피를 사주고,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어느 날, 한 노숙자가 물었다.
"집사님, 왜 우리한테 이러세요?"
강순애는 웃으며 대답했다.
"나도 몰라요. 그냥... 생명이 한 걸음 앞서 걷는 것 같아요."
그녀는 노력이 아니라 반응으로 움직였다.
결심이 아니라 자발성으로 흘렀다.
그녀가 밥을 살 때마다, 주님이 그녀를 통해 먹이셨다.
그녀가 말씀을 나눌 때마다, 주님이 그녀를 통해 말씀하셨다.
그리고 그녀가 돌아와 기도할 때마다, 그녀는 다시 주님을 먹었다.
6. 파손: "당신은 위선자예요"
몇 달 후, 한 교인이 강순애를 비난했다.
"집사님, 교회는 안 나오면서 노숙자들이랑만 어울리세요? 그게 신앙입니까? 당신은 위선자예요."
그 말은 강순애의 가슴에 **금(crack)**을 냈다.
"내가... 잘못하고 있는 건가?"
그녀는 다시 무너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아, 이건... 하중 테스트구나."
그녀는 그 교인에게 조용히 말했다.
"맞아요. 저는 위선자일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저는... 그냥 먹이고 싶었어요. 제가 받은 걸 나눠주고 싶었어요."
7. 골드 웰딩: 먹힘의 영광
시간이 흐르며, 강순애는 자신의 깨진 자리들이 빛나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그녀가 비난받았던 경험들, 무너졌던 순간들, 약했던 고백들이
이제는 노숙자들과 연결되는 통로가 되었다.
한 노숙자가 말했다.
"집사님은 다른 사람들이랑 달라요. 집사님은... 우리를 진짜로 보는 것 같아요."
강순애는 웃었다.
"그건 내가 강해서가 아니라, 내가 먹혔기 때문이야."
하나님은 그녀를 교체하지 않으셨다.
하나님은 그녀의 상처를 금으로 접합하셨다.
그리고 그 금빛 선은, 이제 먹힘의 통로가 되었다.
8. 피드백: 순환하는 먹임의 구조
어느 주일, 강순애는 다시 교회에 나갔다. 그러나 이전과는 달랐다.
그녀는 더 이상 **"헌신하는 집사"**로 오지 않았다.
그녀는 **"먹고, 먹이고, 먹히는 생명"**으로 왔다.
예배 중, 그녀는 찬송을 부르며 주님을 먹었다.
예배 후, 그녀는 낙심한 성도를 만나 주님으로 먹였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기도하며, 주님께 먹혔다.
"주님, 저를 다 쓰세요. 제가 다 녹아서 없어져도 좋습니다."
그녀는 알았다.
먹힘이 끝이 아니라, 다시 채워짐의 시작이라는 것을.
에필로그: 순환하는 생명의 식탁
강순애의 삶은 이제 하나의 순환 회로였다.
1) 주님을 먹는다 → 말씀과 성령으로 채워진다
2) 주님으로 먹인다 → 받은 생명으로 타인을 먹인다
3) 주님께 먹힌다 → 자신이 소진되어 제물이 된다
4) 다시 주님을 먹는다 → 다시 채워진다
이 순환은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이 순환 속에서, 강순애는 깨달았다.
"나는 루저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나의 승리입니다."
그녀가 쌓아온 명분탑은 무너졌다.
그녀가 붙잡았던 자기 의는 녹아내렸다.
그녀가 자랑하던 헌신은 해체되었다.
그러나 그 잔해 속에서,
하나님은 그녀를 먹임의 통로로 재주조하셨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의 안에 거하나니" (요한복음 6:56)
"내가 너희를 먹이고, 너희가 나로 먹이고, 너희가 나에게 먹힌다. 이것이 생명의 순환이다."
뒷이야기: 뿌드득 목 부러지는 소리
강순애는 여전히 가끔 "뿌드득" 소리를 듣는다.
누군가 그녀를 비난할 때,
**"왜 나에게?"**라는 질문이 올라올 때,
**"내가 뭘 잘못했지?"**라는 생각이 고개를 들 때,
주님께서 그녀의 목을 뿌드득 꺾으신다.
"나의 명분"에서 **"하나님의 경륜"**으로.
"나의 헌신"에서 **"주님의 먹임"**으로.
"나의 승리"에서 **"루저의 승리"**로.
그리고 그 순간, 그녀는 다시 주님을 먹는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로마서 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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