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임

사랑 놀이 마당.

콜미리형제 2026. 1. 14. 22:18

사랑놀이: 정체된 창조주 하나님이 춤추기 시작한 이유

 

1. 창조주 하나님 — 충만하지만 정체된 존재
시작이 없는 곳에 누군가 있었다.
아니, '있었다'는 말도 맞지 않다. 시간이 없으니 과거형이 성립하지 않는다.
그냥 있음.
존재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상태.
모든 것을 품고 있지만
아무것도 표현되지 않는 상태.
사랑도 있다. 그런데 사랑할 대상이 없다.
기쁨도 있다. 그런데 나눌 상대가 없다.
생명도 있다. 그런데 살아갈 시간이 없다.
이것이 창조주 하나님의 역설이다.
충만하지만 표현할 수 없고
완전하지만 경험할 수 없다.
마치 가득 채워진 컵처럼
더 이상 담을 것도 없고
흘러넘칠 곳도 없는 상태.

2. 하나님 안에서 일어난 '사랑의 넘침'
그런데 어느 순간
하나님 안에서 떨림이 일어난다.
이건 결핍이 아니다.
충만함이 너무 커서 생긴 내적 압력이다.
사랑이 사랑으로만 머물 수 없다는 떨림.
생명이 생명으로만 정체될 수 없다는 진동.
하나님은 깨닫는다:

"나는 사랑이다.
그런데 사랑한 적이 없다.
나는 생명이다.
그런데 살아본 적이 없다."

이것이 모순처럼 들리지만
하나님에게는 모순이 아니라 존재 방식의 선택지였다.
계속 정체된 완전함으로 있을 것인가?
아니면 완전함을 펼쳐서 사건을 만들 것인가?

3. 왜 사건이 필요했는가?
하나님은 알고 있었다.
사랑은 개념이 아니라 행위라는 것을.
사랑은 속성이 아니라 반응이라는 것을.
사랑이 사랑으로 드러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어제와 오늘이 다르게)
공간이 필요하다 (나와 너의 거리)
어긋남이 필요하다 (다시 맞추는 기쁨)

그래서 하나님은 결심한다:

"나는 나를 사건화하겠다."

이건 창조가 아니라 펼침이다.
있던 것을 드러내는 것이다.
정체된 충만함을 흐르게 만드는 것이다.

4. 창조 — 하나님이 놀이터를 펼친 순간
창세기 1장 1절은
시간의 시작점이 아니라
하나님의 존재 방식 전환 선언문이다.

"베레쉬트(בְּרֵאשִׁית)"
'처음에'가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시작한 게 아니다.
하나님 안에서 무언가를 펼친 것이다.
빛과 어둠을 나눈 것은
단순히 밤낮을 만든 게 아니라
대조와 리듬을 만든 것이다.
하늘과 땅을 나눈 것은
물리적 공간을 만든 게 아니라
거리와 만남의 가능성을 연 것이다.
넷째 날, 시간과 절기가 시작된 것은
하나님이 마침내 반복과 변주의 무대를 완성한 순간이다.

"이제 사랑은 매일 다르게 일어날 수 있다.
어제의 사랑을 복사할 수 없다.
매일 새로 빌드해야 한다."


5. 놀이 — 사랑의 실전 모드
그렇다면 왜 하필 '놀이'인가?
왜 의무가 아니고
왜 명령이 아니고
왜 계약이 아닌가?
하나님은 알고 있었다.
의무는 반복을 낳고
명령은 복종을 낳고
계약은 거래를 낳는다.
그런데 사랑은:

예측 불가능해야 하고
자발적이어야 하고
넘칠 수도 있어야 한다

그래서 놀이다.
놀이는:

실수가 허용되고
넘침이 일어나고
조율이 자연스럽고
다시 시작할 수 있다


6. 어린아이가 본능적으로 아는 것
우리는 어릴 적 놀이를 통해
하나님의 원리를 몸으로 배웠다.
술래잡기를 하다가
친구를 너무 세게 밀어서
친구가 넘어진다.
그 순간 우리는:

놀란다 (어? 넘쳤네)
멈춘다 (게임 중단)
다가간다 ("괜찮아?")
쉰다 (잠시 앉아서)
다시 논다 (이번엔 조심하면서)

이게 사랑의 원형이다.
넘침 → 조율 → 회복 → 재시작
이 리듬을 우리는
교리로 배우지 않고
놀이로 체득했다.

7. 어른이 되며 잃어버린 리듬
그런데 어른이 되면서
우리는 놀이를 버렸다.
놀이 대신:

진지함 (실수는 용납 안 됨)
효율 (과정보다 결과)
정답 (틀리면 탈락)
위엄 (따라오지 못하면 뒤처짐)

을 선택했다.
그 결과:

사랑은 무거워졌고
관계는 거래가 되었고
어긋남은 단절로 이어졌고
조율은 실패가 되었다

베드로와 바울도 그랬다.
베드로는 "주를 위해 목숨을 버리겠다"며 진지했고
바울은 율법의 위엄으로 사랑을 설명했다.
둘 다 옳았지만
둘 다 따라오지 못하는 거리를 만들었다.

8. 디베랴 — 부활한 주님이 보여준 것
그런데 부활하신 예수는 달랐다.
물고기를 굽고 계시다가
실패한 제자들에게 묻는다:

"얘들아, 고기 잡았니?"

이건 심문이 아니다.
이건 놀이터로의 초대다.
그리고 베드로에게 세 번 묻는다:

"나를 사랑하느냐?"

이 질문을 다시 듣는다:

"새 판에서 같이 살아볼래?
이번엔 무겁지 않게.
이번엔 따라오라는 게 아니라 함께.
형제들아, 놀아보자."


9. 사랑놀이 — 하나님의 리듬을 회복하는 법
사랑놀이는 이렇게 작동한다:
(1) 매일 새로 빌드한다
어제 잘했다고
오늘도 같은 방식으로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사랑은:

업데이트가 아니라 재빌드
축적이 아니라 재현현
반복이 아니라 매번 새 창조

이기 때문이다.
(2) 넘쳐도 된다
놀이는 안전하지 않다.
감정이 넘치고 표현이 과할 수 있다.
"저 천방지축을 이번에 어떻게 사랑할까?"
이 고민 자체가
사랑의 넘침이다.
그런데 괜찮다.
왜냐하면:

넘침을 본성으로 고정하지 않고
실수를 관계의 끝으로 보지 않고
조율을 실패로 여기지 않기 때문이다

(3) 조율할 줄 안다
어린아이는 본능적으로 조율하지만
어른은 의식적으로 조율해야 한다.

"어? 지금 넘쳤네"
"잠깐, 쉬자"
"다시 해보자"

이 조율이
어른의 놀이를 가능하게 한다.
조율은:

감정을 억누르는 게 아니라
표현의 속도와 강도를 맞추는 것이다
상대의 리듬을 읽고
나의 넘침을 적절히 나누는 것이다

(4) 다시 웃는다
단절이 아니라 재시작.
끝이 아니라 다음 라운드.
놀이를 위해 웃는다.
용서를 위해서가 아니라
다시 놀기 위해서 웃는다.

10. 왜 신기한가?
창세전 창조주 하나님의 존재가
왜 '사랑'의 정체를 사건화하는 '사랑놀이'를 위해
사건의 배경 현장을 창조하셨는가?
신기한 이유는 이것입니다:
하나님은 완전했기 때문에
불완전한 놀이를 선택했다.
완전함 안에서는:

실수가 없고
넘침이 없고
조율이 없고
회복도 필요 없다

그런데 바로 그 완전함 때문에
사랑이 일어날 수 없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시간을 만들어 (어제와 오늘이 다르게)
공간을 만들어 (나와 너의 거리)
어긋남을 허락해 (다시 맞추는 기쁨)
놀이터를 펼쳤다


11. 사랑의 넘침과 조율 — 일상의 예
"저 천방지축을 이번에 어떻게 사랑할까?"
이 고민은 부담이 아니라
사랑의 충만함이 넘치는 순간이다.
마치:

아이를 보며 "오늘은 뭘 해줄까?" 설레는 부모
친구를 만나며 "이번엔 어떤 이야기 나눌까?" 기대하는 마음
배우자를 보며 "오늘은 어떻게 기쁘게 해줄까?" 궁리하는 순간

이 모든 것이
사랑의 넘침이다.
그런데 여기엔 조율이 필요하다:

아이가 피곤해하면 → 잠시 쉬기
친구가 조용히 있고 싶어 하면 → 말 줄이기
배우자가 혼자 있고 싶어 하면 → 거리 주기

이게 조율이다.
넘침을 억누르는 게 아니라
적절한 때와 방식을 찾는 것이다.

12. 맺으며 — 하나님의 초대
이 이야기는 교리가 아니다.
설득도 아니다.
다만 이런 질문을 던진다:

"혹시 당신도
사랑을 너무 진지하게 하느라
정작 사랑하지 못하고 있진 않은가?
혹시 당신도
완벽하게 하려다가
놀이를 잃어버리진 않았는가?"

하나님은 지금도 묻는다:

"이번에는 어떻게 사랑해볼까?
새 판 시작할래?
넘쳐도 괜찮아.
조율하면 되니까.
다시 시작하면 되니까.
놀아보자."


후기:
창조주 하나님이 창조를 선택한 건
결핍 때문이 아니라
충만함의 표현 욕구 때문이었습니다.
사랑은 정의될 수 없고
오직 사건화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건의 이름이
놀이입니다.
이게 신기한 이유는
우리가 어릴 적 이미 알고 있었다는 겁니다.
그런데 어른이 되며 잊어버렸죠.
지금 우리는
다시 놀이터로 돌아가는 중입니다.


제목: 〈오늘은 또〉
아침에 눈을 떴는데  
특별한 일은 하나도 없고  
커피는 어제보다 쓰고  
뉴스는 또 시끄럽다  

버스 놓치고 신발 젖고  
전화는 올 듯 말 듯  
이런 날에 도대체  
뭘 잘하라고 하지  

그래서 잠깐 멈췄다  
숨 한번 고르고  
오늘은 또  
어떻게 사랑하지  

거창한 건 모르겠고  
누굴 바꿀 힘도 없고  
다만 오늘을  
대충 넘기진 말자  

점심은 혼자 먹고  
괜히 웃긴 영상 보고  
길가 고양이랑  
눈 마주치고  

이런 게 사랑이면  
좀 싱겁지만  
안 하는 것보단  
낫지 않나 싶다  

집에 가는 길에  
괜히 문자 하나 쓰다 지우고  
그래도 마음은  
조금 덜 굳어 있다  

오늘은 또  
어떻게 사랑했지  
잘했는진 몰라도  
살긴 살았다  

내일도 아마  
비슷하겠지만  
그래도 또  
한번 해보자


제목: 〈컴파일링 러브〉

아침에 켜진 건  
머리가 아니라 하루고  
어제 만든 마음은  
오늘에선 오류가 난다  

에로스는 갑자기 튀어나와  
괜히 설레다 사라지고  
필레오는 웃다 말다  
약속을 잊어버리고  

아가페는 너무 커서  
손에 잘 안 잡히고  
스토르게는 가까워서  
오히려 더 어렵다  

그래서 오늘은  
정답을 고르지 않고  
있는 것 전부를  
한번에 돌려본다  

에로스든 필레오든  
아가페든 스토르게든  
지금 이 순간에 맞게  
다시 컴파일  

완벽하면 좋겠지만  
대부분은 임시파일  
그래도 실행은 된다  
오늘은 그걸로 됐다  

누군가를 이해 못 해도  
바로 닫진 말자  
나 자신에게도  
강제 종료는 말자  

오늘 하루는  
테스트 버전이라서  
버그가 있어도  
살아볼 수 있다  

에로스든 필레오든  
아가페든 스토르게든  
사랑을 멈추지 않는 방식으로  
오늘을 빌드한다

 

에로스든 필레오든  
아가페든 스토르게든  
사랑을 멈추지 않는 방식으로  
오늘은 사랑 놀이 마당을 빌드한다  
어느 마당이든


〈오늘, 사랑을 컴파일한다〉

부제(선택): 어느 마당이든

🎼 가사

Verse 1
아침에 눈을 뜨면
어제의 말들이 남아
잘한 것도, 망친 것도
그대로 오늘에 와 있네

도망칠 수는 없지
지우는 건 더 어렵고
그래도 난 다시
손을 씻고 나와

Pre-Chorus
정답은 없고
계획도 자주 틀려
그래도 멈추진 않아
오늘은 오늘이니까

Chorus
에로스든 필레오든
아가페든 스토르게든
사랑을 멈추지 않는 방식으로
오늘을 컴파일해

넘어져도 다시 빌드해
말이 어긋나도 패치해
어느 마당이든
오늘은 사랑 놀이야

Verse 2
누군 말 걸어주지 않고
누군 아직 마음이 닫혀
예전의 나는
그걸 못 견뎠지

이젠 안다
모든 반응이 답은 아니란 걸
기다림도
사랑의 한 줄 코드야

Pre-Chorus 2
빠를 필요 없고
증명할 일도 없어
내가 할 건 하나
오늘을 사는 것

Chorus (repeat)
에로스든 필레오든
아가페든 스토르게든
사랑을 멈추지 않는 방식으로
오늘을 컴파일해

서툴러도 다시 빌드해
조용해도 계속 패치해
어느 마당이든
오늘은 사랑 놀이야

Bridge
아무도 안 봐줘도
점수는 없어도
이 판은 끝나지 않아
숨이 붙어 있는 한

Last Chorus (잔잔하게)
에로스든 필레오든
아가페든 스토르게든
사랑을 멈추지 않는 방식으로
오늘을 컴파일해

잘 못해도 괜찮아
안 멈췄으니까
어느 마당이든
오늘은 사랑 놀이야

Outro
내일은 또 새로
빌드하면 되지
오늘은 여기까지
잘 놀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