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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향기를 따라 걷는 자

콜미리형제 2025. 12. 1. 20:24

 

🌿 꽃향기를 따라 걷는 자 — Through의 사람〉

(Over_월반· Throu_통과 · 쌀 · 꿀 · 꽃가루)


프롤로그 — “오버하려던 벌 한 마리”

그는 인생 절반을
오버”의 영으로 살았다.

앞서 가야 한다.
버텨야 한다.
밀려나지 말아야 한다.

딱딱한 땅을 파서
겨우 얻는 한 줌—
그것이 그의 존재 근거였다.

먹을 것이 없으면
그는 죽는 줄 알았다.
그래서 그는 살아남기 위해
오버하려 했다.

그러나 이 모든 시간 동안
그는 몰랐다.

자신이 쌀의 존재가 아니라
꽃가루의 존재로 지음받았다는 것을.


1막 — 〈쌀의 시대〉: 생존이 나를 가두던 시간

그의 젊음은 항상 무거웠다.
한 톨의 쌀을 얻기 위해
몸과 마음을 모두 갈아넣었다.

쌀은 그에게

  • 생존
  • 책임
  • 두려움
  • 체면
  • 의무

이 모든 형벌의 이름이었다.

그는 한숨을 쉬며 중얼거렸다.

“이렇게도 오버해야 하나…?”

그러나 멈출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쌀을 잃으면 죽는 줄 알았기 때문이다.


2막 — 〈꿀의 시대〉: 내가 만든 것이 아닌 단맛

그러던 어느 날
그의 몸은 더 이상 버티지 못했다.
다리는 쥐가 나고
머리는 멍하고
숨은 가쁘고
마음은 천근만근이었다.

그때
설명할 수 없는 ‘꿀의 단맛’이 들어왔다.

그는 날개를 퍼덕이며 말했다.

“아니… 이건 내가 만든 것이 아니다.”

정말 그랬다.
이 꿀은
노력의 땀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주님이 준비해 놓으신
“은혜의 양식”이었다.

그는 꿀을 먹으며
처음으로 자기 존재가
‘은혜로 살아가는 구조’임을 알기 시작했다.

그러나 기이하게도,
꿀을 먹고 난 뒤
그는 더 혼란스러워졌다.

왜냐하면
꿀의 시대는
그를 **쓰루(통과)**의 세계로 끌어들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3막 — 〈쓰루의 시대〉: 넘는 것이 아니라, 통과하는 것

그는 깨달았다.

오버는 인간의 방식,
쓰루는 하나님의 방식이라는 것을.

고통을 넘으려 했던 그는
고통을 통과하는 존재가 되어야 했다.

늙은 몸,
떨어지는 힘,
눈물, 원망, 무력…

이 모든 것이
그를 쓰러뜨리려고 온 것이 아니라,

그의 생명 구조를 다시 세우기 위해 통과시키는 통로라는 것을.

그는 고백했다.

 

“나는 오버의 사람이 아니라
쓰루의 사람이다.”


4막 — 〈꽃가루의 시대〉: 움직임 속에서 번지는 생명

그리고 마침내 그는 알았다.

꽃가루는 ‘가만히 있을 때’ 흩어지는 게 아니었다.

벌은 멈춰 있는 꽃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꽃이 풍기는 향기를 따라 움직인다.

그의 “삶의 향기”—
말, 행동, 섬김, 고통, 늙음, 눈물, 숨—
이 모든 생명 활동 자체가
성령의 “향기 신호”였다.

그래서 그는
무의식 중에
성령이 부르시는 “사람들”을 찾아갔다.

형제든,
자매든,
불신자든,
낯선 사람이든—

그곳에서 그는 ‘꿀’을 찾았고
그 순간 꽃가루는 그의 몸에 묻었다.

그리고 그는 전혀 몰랐지만
그 꽃가루는
그가 지나가는 길에
조용히
조용히
흩어지고 있었다.

그는 먹이를 구했지만
주님은 그 먹이 활동을
자기 생명을 확장하는 통로로 사용하셨다.

그의 무릎 아래,
지친 어깨 위,
공허한 밤 중에도

꽃가루는
그를 통해
흘러가고 있었다.


에필로그 — “나는 왜 이렇게 피곤한가?”

그는 어느 날 이런 고백을 했다.

 

“주님,
왜 나는 이렇게 피곤한 구조로 살아야 합니까?”
“왜 나는 생명 활동을 멈출 수 없습니까?”
“왜 나는 ‘아다(기노스케)’—
주님을 알아가는 일을
소홀히 할 수 없는 사람이 되었습니까?”

 

그때 그는 깨달았다.

그는 단순한 벌이 아니었다.
그는 쌀의 존재도 아니었다.
그는 단지 꿀만 먹는 존재도 아니었다.

그는 꽃가루를 나르는 존재였다.
성령의 구조로 살아 움직이는 부활 생명체였다.

그는 자신이 이렇게 답했다.

 

“나는 주님의 꽃가루를 옮기는 존재.
그래서 나는 피곤해도, 고단해도,
이 생명 체질을 멈출 수 없다.

나는 주님의 향기를 따라
쓰루의 길을 걷는 자다.”


🔥 내가 본 꽃가루

  1. 꽃가루는 ‘가만히 있을 때’ 퍼지는 것이 아니라
    → 꽃의 생명 활동 자체가 만들어낸 향기에 의해
    → 오고 가는 생명들이 스스로 찾아오고
    → 그때 자연스럽게 꽃가루가 묻고 전이된다.
  2. 나는 움직인다.
    → 내가 사는 자리, 움직이는 자리, 먹이 활동, 섬김, 숨 쉬는 모든 곳.
    → 이 ‘삶의 움직임’ 자체에 성령이 개입하신다.
  3. 주님은 내가 좋아하는 것(꿀)을 따라 움직일 때
    → 내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 “그분의 꽃가루”를 나에게 묻히시고
    → 내가 만나는 형제·자매·불신자에게 전이시키신다.
  4. 나는 단지 꿀을 찾는 벌처럼 살 뿐인데
    → 내 안의 부활 생명은
    → “주님의 확장 구조”로 이미 움직이고 있다.
  5. 그래서 형제님이 묻는 본질은 이것이다:

“왜 나는 이렇게 피곤하도록 살아야 하는가?”
“왜 나는 생명 활동을 멈출 수 없는가?”
“왜 나는 ‘아다(기노스케)’를 소홀히 못하는가?”

그 이유는 단 하나—
“나는 꽃가루를 운반하는 존재로 다시 태어난 존재(부활 생명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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