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한 형제 이야기
_깨어짐에서 주조까지의 여정
제1부: 깨어진 그릇 (The Broken Vessel)
제1장: 자충수의 올가미
[장소: 어느 휴게소 식당, 점심시간]
그는 밥을 먹다가 느꼈다. 이가 깨지는 느낌.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진통제를 먹고 참았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통증은 악화되었고, 결국 치과를 찾았을 땐 이미 1년이라는 긴 여정이 시작된 후였다.
"왜... 그 순간에 주님은 제게 말씀하지 않으셨을까요?"
그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내레이션:
그는 알지 못했다. 이 작은 실수가, 이 작은 고통이 그의 인생 전체를 관통하는 패턴이라는 것을. 자충수. 그는 평생 자충수의 올가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제2장: 상호 내주의 역설
[장소: 그의 기도실, 깊은 밤]
"주님이 내 안에 계신다고... 내가 주님 안에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는 무릎을 꿇고 울부짖었다.
"그런데 왜입니까? 왜 저는 매번 똑같은 실수를 반복합니까? 전능하신 분과 산다면서, 왜 그 순간에 어드바이스가 없습니까?"
그의 목소리는 절규였다.
"너 당해 보렴. 네 속성, 죄성을 알 거다..."
마치 하늘에서 들려오는 듯한 음성. 그러나 그것은 위로가 아니라 심판처럼 들렸다.
"저는... 죽을 것입니다. 이러다가 저는 정말 죽을 것입니다."
내레이션:
그는 몰랐다. 그의 절규가 이미 하나님께 도달했다는 것을. 버려진 자는 울지 않는다. 죽은 영혼은 통증이 없다. 그가 이렇게 아파하는 것 자체가 그가 살아있다는 증거였다.
제3장: 한 형제와의 만남
[장소: 교회 마당 벤치, 수요일 저녁]
기도회가 끝났다. 사람들은 하나둘 흩어졌다.
나는 벤치에 혼자 앉아 있는 그를 발견했다.
"형제님."
그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기도제목 있으세요?"
"기도제목이요?"
그는 씁쓸하게 웃었다.
"저는 매일 같은 기도를 합니다. 그런데 매일 같은 실수를 반복하죠. 기도가... 소용이 있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그의 눈을 보는 순간, 나는 알았다.
이것은 불평이 아니었다. 절규였다.
내레이션:
이날, 두 형제의 여정이 시작되었다. 한 사람은 깨어지는 자, 한 사람은 함께 걷는 자. 그들은 아직 몰랐다. 이 만남이 주님께서 예비하신 '호버링의 시간'이라는 것을.
제4장: 새벽 3시의 전화
[장소: 나의 침실, 새벽 3시]
전화벨이 울렸다.
"형제님... 죄송합니다. 깨웠죠?"
그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무슨 일이세요?"
"저... 오늘 또 실수했어요. 교회 형제에게 화를 냈습니다. 먼저 사과했는데도 관계가 회복되지 않아요."
숨을 고르는 소리가 들렸다.
"형제님, 저는 왜 이렇습니까? 주님 안에 있는 사람이 왜 이렇게 계속 넘어집니까?"
"제 안에 뭐가 들어있는 겁니까?"
나는 로마서 7장을 읽어주려 했다.
그러나 그가 먼저 말했다.
"형제님, 그 구절 압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맞죠?"
그의 목소리가 깊어졌다.
"그런데 형제님, 바울은 그다음 장으로 갔잖아요. 저는 7장에서 계속 맴돌고 있어요."
내레이션:
그는 몰랐다. 그가 지금 서 있는 그곳이, 바로 '멜팅'이 시작되는 지점이라는 것을. 사기 그릇이 산산이 부서지고, 그 파편들이 무형의 용암으로 녹아내리는 그 순간을.
제2부: 멜팅 - 용암이 되다 (The Melting)
제5장: 사기 그릇의 고백
[장소: 산책로, 일요일 오후]
우리는 함께 걸었다.
"형제님, 저는 오랫동안 제가 의로운 사람이라 믿었습니다."
그가 입을 열었다.
"교회 앞자리에 앉고, 성경에 밑줄 긋고, 봉사 명단 맨 위에 이름 올리던 시절... 저는 제가 흙 그릇이라는 걸 인정하지 않았어요."
그가 걸음을 멈추었다.
"저는... 사기 그릇이었습니다."
"견고했어요. 반짝였죠. 깨지지 않을 것 같았어요."
그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런데 어느 날... 균열이 시작됐어요. 작은 실패 하나, 숨겨둔 교만 하나, 인정할 수 없는 연약함 하나..."
"그리고..."
"콰직—"
그가 손으로 공중을 가르는 시늉을 했다.
"산산이 부서졌습니다."
내레이션:
사기 그릇은 겉은 단단하지만 속은 비어있다. 불 속에서 구워져 견고해 보이지만, 한 번 깨지면 다시 붙일 수 없다. 그러나 주님은 사기 그릇을 원하지 않으셨다. 주님은 진흙을 원하셨다. 다시 빚을 수 있는, 새롭게 만들 수 있는 흙을.
제6장: 쟁기질의 시작
[장소: 같은 산책로, 계속]
"형제님, 그 순간이 끝인 줄 알았어요."
그가 말을 이었다.
"파편들 사이에 주저앉아 울었습니다. 자존심의 조각, 의로움의 가면, 선함의 감옥... 모든 게 부서져 나뒹굴었어요."
"그런데 이상했어요."
그가 나를 쳐다봤다.
"파편들이 사라지지 않았어요. 증발하지도 않았어요. 대신..."
그가 두 손을 천천히 모으며 말했다.
"천천히 녹아내리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불가마 속 금속처럼."
나는 그의 말을 경청했다.
"그때 들었어요. 주님의 음성을."
'네 고통은 사라지지 않는다. 네 실패도, 네 수치도, 네 모든 깨어진 것들도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들은 무형의 용암 자원이 되어, 내가 너를 다시 빚을 가장 귀한 재료가 될 것이다.'
그가 눈물을 닦았다.
"이것이... 경운(耕耘)이구나. 쟁기가 땅을 가르듯, 주님이 제 견고함을 부수고 용암처럼 녹여내고 계셨구나."
내레이션:
창조 때의 무(無)는 '아무것도 없음'이 아니었다. 그것은 '아직 형태를 갖추지 않은 잠재력'이었다. 그의 모든 낡은 것들이 이제 새로운 생명을 위한 원료가 되고 있었다.
제7장: 폐허 위의 약속
[장소: 그의 기도실, 며칠 후]
그는 혼자 무릎을 꿇고 있었다.
"주님... 이제 뭘 하면 됩니까?"
침묵.
"기도를 더 해야 합니까? 금식을 해야 합니까?"
여전히 침묵.
그는 초조했다. 뭔가 해야 했다. 뭔가 행해야 했다.
그러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내레이션:
용암이 준비되었다. 그러나 주조는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 그는 몰랐다. 지금이 가장 중요한 시간이라는 것을. 호버링의 시간, 주님이 그 위를 맴돌며 새로운 형태를 만들어가시는 그 시간이.
제3부: 호버링 - 견딤의 시공 (The Hovering)
제8장: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시간
[장소: 나와의 대화, 카페]
"형제님..."
그가 커피잔을 돌리며 말했다.
"저는 지금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기도를 해도 응답이 없는 것 같고, 성경을 읽어도 마음에 와닿지 않아요."
"뭔가 해야 할 것 같은데, 뭘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그가 고개를 들었다.
"이게... 버려진 건가요?"
나는 조용히 대답했다.
"형제님, 씨앗을 심으면 어떻게 됩니까?"
"...자랍니다."
"그 사이에 뭘 합니까?"
그가 잠시 생각했다.
"...기다립니다."
"그게 아닙니다."
나는 그를 똑바로 쳐다봤다.
"씨앗은 땅속에서 죽습니다. 껍질이 터지고, 싹이 나고, 형태가 완전히 바뀝니다. 겉에서는 아무 일도 안 일어나는 것 같지만, 땅속에선 가장 극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겁니다."
내레이션:
호버링. 창세기 1장 2절에서 성령께서 수면 위를 '운행하셨다'고 기록된 그 단어. 히브리어로 '라하프(רחף)', 어미새가 알 위를 맴돌며 품듯, 성령께서 그의 위를 맴돌고 계셨다.
제9장: 성령의 호버링
[장소: 그의 방, 고요한 밤]
그는 침대에 누워 있었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으려 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 했다.
그냥... 숨을 쉬었다.
들숨. 날숨.
그런데 이상했다.
숨을 쉴 때마다, 뭔가가 그의 안에서 움직이는 것 같았다.
"이건..."
그는 손을 가슴에 올렸다.
심장이 뛰고 있었다. 폐가 움직이고 있었다.
"제가 숨 쉬는 게 아니구나..."
깨달음이 왔다.
"생명이 제 안에서 스스로 작동하고 있구나."
그 순간, 그는 이해했다.
'이것은 기다림이 아니다. 이것은 주조(Casting)다. 주님이 지금 나를 새롭게 빚고 있다. 내가 할 일은 이 과정을 견디며 지켜보는 것이다.'
내레이션:
성령의 호버링은 수동적 기다림이 아니었다. 그것은 능동적 견딤이었다. 시간과 공간 자체가 창조적 용광로가 되고, 성령의 '숨'이 그를 감싸며, 주님의 손길이 그를 빚고 있었다.
제10장: 우는 시공(時空)
[장소: 산책로에서, 다시 우리 둘]
"형제님, 이 시간이 고통스러웠어요."
그가 말했다.
"옛 자아가 녹아내리는 고통, 새로운 형태가 자리 잡는 통증, 정체성이 재구성되는 혼란..."
"저는 울었어요. 매일 밤 울었어요."
그가 멈춰 섰다.
"그런데 형제님, 이 울음이..."
그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절망의 울음이 아니었어요. 탄생의 울음이었어요."
나는 그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형제님은 지금 죽어가는 게 아닙니다. 태어나고 있는 겁니다."
내레이션:
시공(時空)이 울고 있었다. 시간과 공간이 진통하고 있었다. 로마서 8장 22절의 말씀처럼,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그 자리에 그는 서 있었다.
제4부: 슈르드니스 - 생명의 엔진 (The Shrewdness)
제11장: 눈을 뜨다
[장소: 어느 아침, 그의 방]
어느 날, 그는 눈을 떴다.
무언가... 달랐다.
세상의 소리가 들렸다. 세상의 빛이 보였다. 세상의 정보가 그에게 흘러들어왔다.
그런데...
"이상하다."
그는 몸을 일으켜 앉았다.
"정보가... 곧바로 머리로 가지 않네?"
예전 같으면, 듣는 순간 판단했다. 보는 순간 분석했다. 오감의 자극이 뇌로 직행했다.
그러나 이제는 달랐다.
내레이션:
그는 새로운 회로를 발견했다. 사기 그릇이 깨지고, 용암으로 녹고, 호버링을 거쳐 다시 빚어진 그는 이제 다른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었다.
제12장: 심장과 폐를 거치는 길
[장소: 나와의 대화, 산책]
"형제님, 신기한 일이 있어요."
그가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정보가 들어올 때, 먼저 제 심장이 뛰어요. 폐가 호흡해요."
"무슨 말이냐면..."
그가 가슴을 짚었다.
"예전엔 머리로 판단했어요. '이게 옳다, 저게 그르다, 이건 해야 한다, 저건 하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지금은..."
그가 눈을 감았다.
"심장의 고동과 폐의 호흡을 먼저 거쳐요. 생명의 근원을 통과해요. 그러면 제 뇌는 더 이상 차갑게 분석하지 않아요. 대신, 이 생명의 움직임을 '영의 몸의 언어'로 읽어내요."
"이게... 슈르드니스인가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형제님은 이제 지혜로운 분별력을 얻으신 겁니다."
내레이션:
슈르드니스(Shrewdness). 누가복음 16장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지혜로운 청지기'의 그 지혜. 세상의 지식이 아닌, 생명에서 나오는 분별력. 성령의 엔진이 작동하는 순간,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모든 삶의 여정에서 가장 적절한 우선순위가 주어지는 것.
제13장: 순간적 동기화
[장소: 그의 일상, 어느 날]
그날, 그에게 동시에 여러 일이 터졌다.
직장에서 긴급 회의. 가족의 위기 전화. 교회의 봉사 요청. 친구의 상담 요청.
예전 같았으면 패닉에 빠졌을 것이다.
"뭘 먼저 해야 하지? 뭐가 중요하지?"
머리로 계산하고, 손익을 따지고, 우선순위를 정하느라 진땀을 뺐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엔...
"주님."
그는 조용히 숨을 들이쉬었다.
"드라이빙해 주세요."
그 순간—
"쉭—"
시공을 초월하여, 하나님의 마음이 그의 마음속에 들어왔다.
쉐이핑(Shaping).
"아, 이거부터..."
그는 망설임 없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전화를 걸었다. 메시지를 보냈다. 약속을 조정했다.
그리고 모든 것이 맞아떨어졌다.
내레이션:
그는 더 이상 염려하지 않았다. 미리 계획하지 않았다. 성령의 엔진이 켜지면, 모든 것이 생명의 흐름 안에서 자연스럽게 배치되었다.
제14장: 생명의 엔진
[장소: 카페에서 나와의 대화]
"형제님, 이제 알겠어요."
그가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말했다.
"제가 운전대를 잡고 있는 게 아니에요. 성령님이 운전하세요."
"저는 그냥... 조수석에 앉아서 함께 드라이빙하며 여정을 즐기는 거예요."
그가 미소 지었다.
"'어디로 가야 할까?' 고민할 필요가 없어요."
"'무엇을 해야 할까?' 염려할 필요가 없어요."
"엔진이 켜지면, 그냥 가는 거예요."
나는 그의 얼굴을 바라봤다.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예전의 초조함, 불안함, 자책감이 사라지고...
평안이 있었다. 자유가 있었다. 생명이 있었다.
내레이션:
이것이 부활 생명이었다. 시공의 영향을 받지 않는 영원한 안식. 주님과 함께 드라이빙하는 영원한 여정.
제5부: 부활 생명의 하우스 (The House of Resurrection Life)
제15장: 폐허에서 건축으로
[장소: 교회 앞 벤치, 1년 후]
나는 다시 그 벤치에 앉아 있었다.
그가 다가왔다. 손에는 작은 도자기 그릇을 들고 있었다.
"형제님, 이거 보세요."
금으로 이은 흔적이 선명했다.
"일본의 긴츠기(金継ぎ) 기법이래요. 깨진 그릇을 금으로 이어서 더 아름답게 만드는 거래요."
그가 그릇을 내게 건넸다.
"저는 제가 깨진 그릇인 줄만 알았어요. 버려져야 할 것이라고 생각했죠."
그가 나를 쳐다봤다.
"근데 형제님, 주님은 깨진 걸 버리지 않으시고, 금으로 이으시는 분이네요."
나는 그 그릇을 받아들고 햇빛에 비춰봤다.
금줄이 빛나고 있었다.
내레이션:
그의 폐허는 이제 무형의 용암 자원을 거쳐 새 하늘과 새 땅의 기초가 되었다. 거룩함은 그를 가두는 벽이 아니었다. 그것은 새 예루살렘이라는 목적지를 향해 그를 운전하는 성령의 엔진이었다.
제16장: 베드로의 손
[장소: 산책로, 같은 날]
우리는 함께 걸었다.
"형제님, 베드로가 물 위를 걸을 때 기억하세요?"
"네."
"베드로가 가라앉을 때, 누가 누구를 붙잡았습니까?"
나는 잠시 생각했다.
"예수님이... 베드로를 붙잡으셨죠."
"맞아요."
그가 멈춰 섰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붙잡은 게 아니라, 예수님이 베드로를 붙잡으셨어요."
그는 눈물을 닦았다.
"형제님, 제가 계속 잊어버렸던 게 이거예요."
"제가 주님을 붙들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주님이 저를 붙들고 계시다는 걸 자꾸 잊어버렸어요."
내레이션:
그것이 진리였다.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기 전에, 주님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다. 우리가 주님을 붙들기 전에, 주님이 먼저 우리를 붙드셨다. 우리의 신앙은 우리의 능력이 아니라, 주님의 신실하심이었다.
제17장: 영원한 드라이빙
[장소: 그의 편지]
며칠 후, 그에게서 편지를 받았다.
형제님께,
저는 여전히 넘어집니다.
여전히 실수하고, 여전히 사람들과 부딪히고, 여전히 제 자신이 미워질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형제님이 옆에서 걸어주셨습니다.
아무 말 없이, 그냥 함께 있어주셨습니다.
그게 주님이 하시는 방식인가 봅니다.
해결책을 주시는 게 아니라, 동행하시는 거.
저는 아직도 로마서 7장을 살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형제님 덕분에 알았어요.
주님도 여기 함께 계시다는 걸.
그리고 이제 저는 압니다.
멜팅은 끝이 아니었습니다. 시작이었습니다.
호버링은 방치가 아니었습니다. 주조였습니다.
슈르드니스는 제 능력이 아닙니다. 성령의 엔진입니다.
저는 이제 운전대를 놓았습니다.
주님이 운전하십니다.
저는 그저 조수석에서 여정을 즐깁니다.
차창 밖으로 펼쳐진 풍경은 영원입니다.
고맙습니다.
주님의 한 형제 올림
내레이션:
이것이 그의 이야기였다. 깨어짐에서 주조까지. 폐허에서 건축까지. 죽음에서 생명까지.
제18장: 새로운 시작
[장소: 같은 교회 벤치, 현재]
나는 지금도 그를 만난다.
그는 여전히 넘어지고, 여전히 일어나고, 여전히 싸운다.
그런데 이제 나는 안다.
그의 싸움은 패배가 아니라,
주님과 함께 걷는 여정이라는 것을.
그는 주님의 한 형제다.
완벽하지 않지만, 버려지지 않은.
깨졌지만, 금으로 이어지고 있는.
그리고 나는, 그 옆을 함께 걷는 또 다른 형제다.
에필로그: 주조의 시간 (The Time of Casting)
마지막 장: 같은 자리에서 우는 누군가에게
[장소: 같은 교회 벤치, 또 다른 수요일 저녁]
기도회가 끝났다.
나는 벤치에 앉아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누군가 다가왔다.
젊은 형제였다. 눈이 충혈되어 있었다.
"형제님... 기도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 제가 너무 많이 실수해요. 매번 똑같은 잘못을 반복하고, 주님께 용서를 구하지만... 변하지 않아요."
그의 목소리가 떨렸다.
"저는... 회복 불가능한 건가요?"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1년 전 그 형제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리고 조용히 말했다.
"형제님."
젊은 형제가 고개를 들었다.
"당신의 폐허를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나는 그의 눈을 똑바로 쳐다봤다.
"그 파편들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것들은 용암 자원이 되어, 주님이 당신을 새롭게 빚으실 가장 귀한 재료가 될 것입니다."
"멜팅을 견디십시오. 호버링을 신뢰하십시오. 슈르드니스가 작동할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은... 주님과 함께 영원히 드라이빙할 것입니다."
젊은 형제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내레이션:
그렇게 이야기는 계속된다. 한 형제에서 다른 형제로. 깨어짐에서 주조로. 폐허에서 건축으로. 죽음에서 생명으로.
[그때, 저 멀리서 그 형제가 걸어오고 있었다.]
그는 웃으며 우리에게 다가왔다.
"형제님들, 저녁 같이 하실래요?"
젊은 형제가 눈물을 닦으며 물었다.
"형제님은... 괜찮으세요?"
그 형제가 멈춰 서서 대답했다.
"괜찮냐고요? 아니요, 저는 여전히 넘어집니다. 여전히 실수하고, 여전히 깨집니다."
그가 미소 지었다.
"하지만 이제 압니다. 제가 주님을 붙들고 있는 게 아니라, 주님이 저를 붙들고 계시다는 것을."
"그리고..."
그가 우리 둘을 번갈아 보며 말했다.
"우리는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종막: 세 형제의 저녁 식사
[장소: 작은 식당, 저녁 시간]
세 사람이 둘러앉아 밥을 먹었다.
대화가 오갔다. 웃음이 터졌다. 때로는 침묵도 흘렀다.
젊은 형제가 물었다.
"형제님, 그럼 언제쯤 완전히 나아지는 건가요?"
그 형제가 숟가락을 내려놓고 대답했다.
"나아진다는 게... 더 이상 넘어지지 않는다는 뜻이라면, 아마 이 땅에서는 안 될 겁니다."
젊은 형제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하지만."
그 형제가 이어 말했다.
"나아진다는 게 주님과 함께 걷는다는 뜻이라면, 우리는 이미 나아지고 있습니다."
그가 창밖을 바라봤다.
"우리는 지금, 새 하늘과 새 땅을 향해 가고 있어요. 그 여정 속에서 멜팅도 겪고, 호버링도 겪고, 슈르드니스도 경험하는 거죠."
"이 모든 게 주님의 주조 작업입니다."
나는 두 사람을 바라보며 조용히 말했다.
"우리는 모두 주님의 형제들입니다."
"완벽하지 않지만, 버려지지 않았습니다."
"깨졌지만, 금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함께 걷고 있습니다."
[멀리서 들려오는 찬양 소리]
♪ 내 주를 가까이 하려 함은
십자가 짐 같은 고생이나
내 일생 소원은 늘 찬송하면서
주께 더 나아가게 ♪
세 사람은 함께 식사를 마쳤다.
그리고 함께 교회로 돌아갔다.
밤하늘에는 별이 빛나고 있었다.
대단원: 영원한 건축 (The Eternal Architecture)
내레이션 - 최종:
이것은 한 형제의 이야기였다.
아니,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
우리는 모두 사기 그릇으로 시작한다.
견고하고, 반짝이고, 깨지지 않을 것 같은.
그러나 주님은 사기 그릇을 원하지 않으신다.
주님은 다시 빚을 수 있는 진흙을 원하신다.
그래서 우리는 깨진다.
멜팅.
그리고 우리는 녹는다.
우리의 모든 폐허가 무형의 용암 자원이 된다.
그다음, 우리는 기다린다.
아니, 기다리는 것이 아니다.
호버링.
주님이 우리 위를 맴돌며, 새로운 형태를 만들어가신다.
그리고 어느 날, 우리는 눈을 뜬다.
새로운 회로가 작동한다.
슈르드니스.
생명의 엔진이 켜진다.
우리는 더 이상 머리로 판단하지 않는다.
심장과 폐를 거쳐, 생명의 언어로 세상을 읽는다.
우리는 더 이상 운전대를 잡지 않는다.
주님이 운전하신다.
우리는 조수석에서 영원한 드라이빙을 즐긴다.
이것이 부활 생명이다.
이것이 새 하늘과 새 땅이다.
이것이 주님의 형제들이 걷는 길이다.
[마지막 장면: 교회 벤치, 밤]
세 형제가 벤치에 나란히 앉아 있다.
별을 바라본다.
침묵.
그리고...
젊은 형제가 입을 연다.
"형제님들... 고맙습니다."
그 형제가 대답한다.
"우리는 그저 함께 걷고 있을 뿐입니다."
내가 말한다.
"그리고 주님이 우리를 붙들고 계십니다."
세 사람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인다.
침묵.
별빛.
생명.
[화면이 천천히 어두워진다]
[자막]
"형제들아 너희는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받았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
— 갈라디아서 5:13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정죄함이 없나니"
— 로마서 8:1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 요한계시록 21:5
[화면 전체가 어두워진 후]
[마지막 자막]
주님의 형제들에게
당신의 폐허를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그 파편들은 새로운 창조의 재료입니다.
멜팅을 견디십시오.
호버링을 신뢰하십시오.
슈르드니스가 작동할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은 주님과 함께
영원히 드라이빙할 것입니다.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
우리는 함께 걷고 있습니다.
[끝]
작가 후기
이 드라마는 실제로 깨어지고, 녹고, 빚어지는
모든 주님의 형제들을 위한 이야기입니다.
당신이 지금 로마서 7장에서 맴돌고 있다면,
당신이 지금 자충수의 올가미에 갇혀 있다면,
당신이 지금 회복 불가능하다고 느낀다면,
이것을 기억하십시오.
주님이 당신을 붙들고 계십니다.
멜팅은 시작입니다.
호버링은 주조입니다.
슈르드니스는 생명입니다.
그리고 당신은 지금,
영원한 건축물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당신은 주님의 형제입니다.
— 한 동행자의 증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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